일반 인공지능 확산
물론, 선택지가 충분히 주어진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처럼 정년이 보장된 직업으로 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인공지능에 묻혀서 지내다 보면 이따금씩 아직 현업에 있었더라면 어떨까 상상해 보곤 한다.
마지막 직장은 대학이고 교수였다. 연구하고 논문 쓰고 학생들 가르치는 게 주업이다.
우리 같은 인문사회학자들은 논문을 한편 쓰려면 관련된 논문을 수십 편은 읽어야 하고 또 연관된 서적들을 뒤져야 한다. 족히 수개월은 걸리는 여간 지난한 작업이 아니다. 학회나 저널에 논문을 제출한다고 다 게재되는 것도 아니다. 심사위원들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썩 잘 됐으면 무수정 게재지만 여간해선 어렵다. 그다음이 수정 후 게재, 이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수정 후 재심 혹은 게재 불가 등의 판정을 받게 되면 대략 난감이다. 더군다나 시일이 촉박해서 그 논문이 통과 여부가 승진이나 재임용과 연관된 경우라면 속이 타 들어간다.
은퇴하고 한 두해 지나자마자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 챗지피티를 필두로 빙, 시리에서 근자에는 펄프랙시티, 구버, 노트북엘엠에 이르기까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소위 명문 대학의 교수 자리가 부러운 까닭은 그 명성보다는 거느린 제자들에 있다. (기실 퇴계나 다산 등 조선의 선비들이 엄청난 문집을 남길 수 있었던 것 도 기라성 같은 제자들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같은 주제(전공)를 다루는 만큼 명석한 제자들의 자료 찾기, 분석하기 등은 지도 교수에게도 적잖은 영감을 준다.
근자에 출판사로부터 저술을 요청받은 차에 논문을 한편 써 보았다.
챗지피티 4.o은 어떤 똑똑한 제자보다도 더 산뜻하게 내가 원하는 자료들을 챙겨 준다.
솔트룩스가 공개한 구버는 통계나 분석에 탁월한 제자보다 깔끔하게 조사를 끝내 준다.
노트북엘엠은 완벽한 나만의 일반인공지능 빅데이터 방을 만들어 준다.
이들을 동원해서 논문을 끝내는 데 이틀에 걸쳐 대략 일곱 시간 정도 소요한 듯싶다.
이 논문을 관련 학회에 제출하면 최소한 부분 수정 후 게재를 장담한다.
해서, 아직 현역이라면 더 좋은 걸까 아님 더 나쁜(힘든) 걸까를 자문해 본다.
이 밖에도 학생들의 과제 평가나 혹은 시험 성적 등 인공지능이 몰고 올 여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은퇴자다. 현장의 변화는 저들에게 맡기자. 그리고 나는 그저 오늘에 뒤처지지 않도록 좇아갈 뿐이다.
해서 오늘도 일찌감치 노트북을 챙겨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