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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Sep 18. 2024

죽은 市民의 사회

 침대 맞은편에 “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이라고 적힌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 마지막 구절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서예를 하는 지인이 격려해 준답시고 써준 글이다. 

싫든 좋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눈 뜰 때면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답답한 심정은 오래 묵은 체증 마냥 가슴을 누른다. 

풀이하면 ‘어지러운 세상에 배운 사람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구나’쯤 돼지 싶다. 

70년 대, 대학 시절을 보냈다. 유신 정권 즈음이다. 대학교 정문 좌우로 탱크가 서 있고 그 옆엔 완전 무장하고 M16을 든 군인들이 포진해 있던 학교 앞은 늘 상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때다. 난 상대방을 향해 제대로 돌 한번 던진 적도, 최루 가스나 곤봉에 좇긴 기억도 희미하다. 그만큼 운동에 소극적이었다. 그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르거나 이러저러한 사회적 불이익을 당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았었다. 굳이 과거로 쓰는 건 이젠 모두 탕감했다는 홀가분한 생각에 서다. 아니 어떤 때는 좀 과하지 싶기도 하다. 나는 나대로 또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이만하면 됐다.

하나 그런 부담에서 겨우 자유로워질 만하니 또 다른 부채 의식이 짓누른다. 대한민국에 고학력자가 많지만 박사에다 교수까지 지냈으니 지성인은 못 돼도 지식인임에는 분명하다. 하여 남들은 인정하든 말든 나름 배운 사람으로 서의 부담감에 가슴 눌리곤 한다.

왜 우리는 오늘의 부조리에 침묵할까? 

고령 세대는 한국 전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반공은 여전히 저들의 국시요 지고의 가치다. 

한번 빨갱이로 몰면 재고의 여지도 없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울면 순사가 잡으러 온다”는 세뇌 교육을 받은 세대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중 장년 층은 모난 돌이 정 맞는 꼴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가만히 있었기에 중간은 차지했으니 지낼 만하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다. 

청년층은 무기력하다. 부를 거머쥐고 소비나 일삼으며 나때 타령을 하는 선배들을 생각하면 참담하다. 아니 누군가가 저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엔지 세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은? 한심하다. 

지식인은? 비겁하다. 

세태를 직시하면 결코 이럴 때가 아닌 데 지금 우리는, 나는 이렇게 숨 쉬고 있다. 마치 죽은 듯이 말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혹, 위안이 될까 싶어 오랜만에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를 뒤져 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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