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과 정상

Right or Normal

by 찾다가 죽다


새로 이사 온 집 2층 서재 창가에 작은 베란다가 있고 그 한편엔 사다리(펼치면 옥상 위 지붕까지 닿을 수 있는)가 기대서 있다. 먼저 주인이 두고 갔나 보다, 필요하면 가지러 오겠지 했는 데 별 얘기가 없다.

여름철 장마가 닥치니 실내 벽을 타고 빗 물이 스며든다. 한쪽이 고장 나 조금은 불안한 사다리를 펴고 올라가 보니 옥상이 물 바다다. 폭우로 인해 좁은 배수구가 넘쳐 스며들었지 싶다. 그때 든 생각, ‘아하! 이럴 때 쓰라고 두고 갔나? 아니지, 하자가 있으면 고쳐 놓던가 적어도 알려는 주고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 전 황석영 작가가 방송에 나와 식민지 근대화론을 도둑놈이 두고 간 사다리에 불과하다고 깔끔하게 정리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그럼 이건? 하자에 대한 배려일까? 아님 못 쓰게 돼서 버리고 간 사다리에 대한 미화일까? 해서 언제 곤 찾아와서 내 물건이니 내놓으랄까 싶어 선뜻 치우지도 못한다.

누가 됐건 상대와 대화하다가 답답하면 왜 그러지? 왜 저렇게 생각할까? 나도 그럴까? 하며 자문하곤 한다. 상대가 보기에 아마 나도 그럴 게다. 늙는다는 건 피부가 건조해지듯 그렇게 굳어졌구나 싶어 돌아서면 서글퍼 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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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팬데믹과 인공지능이라는 천지개벽을 지나면서 또 한 차례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음을 절감한다. ‘왜 저럴까?’ 할 때만 해도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 내가 옳으냐 아니면 네가 그르냐 하는 판단의 영역이었다. 하나 이제는 옳고 그름 혹은 좋고 싫음을 떠나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해 봐야 하는 세상이다. 해서 나는 정상인가를 돼 집곤 하는 데 이젠 이 또한 시들하다. 왜? 내 보기엔 세상이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나만 정상이라면 이야말로 지극히 비정상 아닌가?

지금 왜 느닷없이 20년 도 더 된 현역이던 김 중위의 총기 사망사건이 떠오를까? 당시 그의 부친은 육사 출신의 삼성 장군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자살 혹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나온다. 최근 현역 국회의원의 아버지이면서 의사 출신인 노인과 정치계의 거물로 알려진 또 다른 한 분 등이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돌아가시거나 제 때에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하물며 나 같은 필부에 있어서야? 어떻게 든 아프지 말고 버티고 볼 일이다. 세상은 뒤죽박죽인 데 정권을 쥔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단다. 모든 게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비정상인 게 마땅하다. 글을 쓰다가 잠시 곁눈질에 들어온 창밖의 사다리가 나를 예까지 데리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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