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함과 외로움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by 찾다가 죽다

한나 아렌트가 쓴 ‘제국주의의 기원’을 읽다 보면 이런 의미가 읽힌다.

“외로운 사람(lonely man, 그리스어 eremos)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과 접촉할 수 없거나, 혹은 그들의 적대에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반대로, 고독한 사람(solitary man)은 혼자 있지만, 인간이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독 속에서 나는 ‘나 혼자(by myself)’이면서도 ‘나와 함께(together with my self)’ 있는 상태, 곧 둘이 하나인(two-in-one) 존재다. 그러나 외로움 속에서 나는 사실상 하나일 뿐이며, 모든 이들에게 버려진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대학에는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부화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이란 글귀가 눈에 띄는 데 풀이하면 군자는 어울리되 패거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패거리를 마디되 서로 화합할 줄 모른다는 뜻쯤 된다. 두 개의 글을 빗대보면 군자는 고독한 축에 소인은 외로움에 속한 사람이다

논어를 펼치면 제일 처음이 학이편이다. 첫 글자가 학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곧, 1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2절,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그리고 3절,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로 이어진다. 어설프지만 1절은 평소 책을 가까이하고 대학으로 옮겨서도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나름 공감하는 터다. 2절도 그런대로 말이 된다 싶은 게 은퇴하고 나니 이따금 찾아주는 이가 반가워 더더욱 실감하는 바이다. 문제는 3절 곧,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면 군자라 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얼핏 수긍하기 어렵다. 더욱이 요즘처럼 셀럽이 판을 치는 세상에 군자연하라니 어불성설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는 외로움으로 가능해진다고 한다.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계층 간, 지역 간, 소득 간, 성별 간 양극화가 마치 동에서 서처럼 멀어지고 있다. 그 근원은 외로움 때문이다. 산업사회 이후 탈 대량화로 인한 해체는 피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다. ‘남과 다르면 안 되는 획일적 세상’에서 ‘남과 같으면 안 되는 다양한 세상’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혼자를 강요한다. 관계는 SNS에 의한 비대면으로만 가능하다. 혼자 남겨진 상태를 외로움으로 맞이하느냐, 고독함으로 승화하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상태에서 군자연함은 적어도 파당을 짓지 않는 상태여서 외로운 삶이기보다는 고독한 삶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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