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뒤지는 맘

by 찾다가 죽다

혹시 ‘뫔’이란 글씨를 아시는지? 이 둘은 하나인데 노화 속도가 다르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양의 정자를 둘러볼 요량으로 여행을 떠났다. 화림동 계곡을 따라 어쩜 그렇게 주위의 지형지물에 맞도록 지어졌는지 감탄을 하며 바라보다 거연정에 이르렀다. 바위와 바위 사이가 불과 오륙십 센티미터? 내 보폭이 칠십이니, 마음 놓고 폴짝 뛰다가 바위 사이로 빠졌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돌이켜도 어이가 없다. 의사 말로는 골반(뼈)이 굳어져 보폭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번쩍 들어 옮겼던 대리석이 꿈쩍을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왜 몸처럼 마음은 늙지 않는 걸까?


나이 들수록 경직되는 이유는 육체적으로는 탈수 현상이요 정신적으로는 지식과 경험의 유효 기간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앞서 개울에 빠진 이유는 신체의 탈수로 몸이 뻣뻣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고집이 세지는 건 내 생각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평생 쌓은 지식과 경험이 폐기 처분당하는 건 참기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어쩌랴! 샤무엘 아브스만이 쓴 ’ 지식의 반감기‘라는 책에 보면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를 예로 들어 우리가 아는 지식의 수명의 단축을 지적하고 있다. 하기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은 학창 시절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문명 들이다. 옥스퍼드 대학이 조사해서 발표했다는 ’ 고용의 미래‘보고서를 보면 향후 20년 내에 현존하는 직업의 47%, 거의 절반이 사라질 거라고 한다.


젊어서는 용솟음치는 혈기로 육신을 제어하기가 버거웠다. 나이가 드니 생각들이 마치 연기 마냥 피어올라 가슴속에 담아두기가 힘들다. 평생을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 날 가만두질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변했다.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해서 드러내면 잔소리요 노파심이 된다. 꼰대라는 핀잔을 벗기 어렵다. 그럼 이대로 용도 폐기당하고 쥐 죽은 듯 살아야 하나? 그러기에는 고령화 사회로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세대 간, 이념 간, 계층 간 벌어질 대로 벌어진 이 간극을 어찌 메울까? 어찌 건널까? 나름 양자 부정(neither nor)이 아닌 양자 긍정(either or)의 자세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겠다.

오늘은 동년배 이웃과 바둑 두며 이 얘기나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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