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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Aug 16. 2023

대화가 필요해

시니어 해부학 5

홍콩 가까이 심천대학교라는 곳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지낸 적이 있다. 

사회과학 대학으로 가려면 반드시 정원을 지난다. 그 한가운데 커다란 돌이 서 있는데 ‘聽石’이라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돌이 듣는다’ 그러니 말 조심하라는 뜻일 게다. 


말은 물과 같아서 반드시 새게 마련이다. 한데 인간은 마음에 품은 말을 내뱉지 않고는 못 견디는 동물이다. 목숨을 걸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토설한 이발사를 보라. 

아니 무수히 떠도는 소문, 비난, 욕설, 괴담 등은 배설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래도 후련하진 않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했기 때문이다. 각종 상담 전화가 개설되고,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임명되고 가까운 일본에서는 들어주는 일이 직업이란다.


이사 와서 곧 서재에 聽野齋(청야재)라는 현판을 내 걸었다. 청야라 함은 세상의 모든 소리요 재는 그러한 집이니 곧,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집(house of hearing)쯤 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엔 입력의 폭증과 관계의 단절을 꼽고 싶다. 입력의 폭증이라 함은 5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게 너무 많은 세상이다. 24시간 열려있는 카톡에서 페북,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운전할 때도 내비게이션에 집중해야 하고 대중교통을 타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어야 한다. 

 유튜브 조회수를 더해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 인구의 열 배는 넘을 듯하다. 그런데 출력 곧 배출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서로가 너무 다르고 또 바쁘다. 그만큼 관계도 토막이 나 버렸다. 관계의 단절은 대화의 단절을 불러온다.


간판으로는 부족할 듯하여 오래전부터 공부해 온 의미치유 상담을 알리고자 얼마 전에는 소위 ‘원예심리상담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해서 청야재에 덧붙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대개가 시니어들이다. 부모 자식 간에, 고부간에, 직장 상사나 동료, 이웃 간에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시니어들의 심각성은 도를 넘는다.

달리 해법이 없다. 

아니 해법을 구하는 문제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배출할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들어주는 게 일이다. 대화하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단지 염려되는 건, 들어주는 이는 정상인가 하는 자기 성찰이다. 모를 일이다.


그저 차 한잔 우려 내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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