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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Aug 24. 2023

근자감과 시대정신

시니어 해부학 7

 근자에 출판된 서적가운데 ‘가난은 정신병이 에요’로 시작해서 ‘부자 될 준비가 됐습니까?’로 끝나는 책이 하나 있다. 동기부여에 관한 책이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유튜브가 됐건 책 출간이 됐건 부자나 건강이나 성공이나 혹은 장수 등등에 대해 주장하려면 당사자가 그런 성취를 이뤘거나 그만큼 장수할 때 비로소 신뢰할 수 있다. 

이 책은 적어도 책에 쓰인 본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금전적으로는) 성공한 부류라 할 수 있어 돈일 내고 산 책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첫 장부터가 도발적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지적에

“요즘엔 그래야 책이 팔려요. 해법을 제시하잖아요. 아빠가 쓰시는 책들은 너무 계몽적이거나 문제 제시에 그치는 경향이 있어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든지 아니면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고 있는 아비가 안쓰러웠든지 작심한 듯 아들 녀석이 쏟아내는 말들이다.


“야, 이건 너무 근자감 아니냐?”

“그래서 팔리잖아요.”

내 보기엔 뻔뻔함인 데 저들은 자신감이라고 부른다.

진리와 원친과 상식이 당대에 뒤짚이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마녀 사냥에서 현미경에 의한 병원균의 발견까지, 천동설에서 망원경에 의한 지동설에 이르기까지, 제 아무리 패러다임 혁명(paradigm shift)이라지만 거기엔 최소한 누 대에 걸친 세월의 축적이 있었다. 

헌데 이건 젊어서까지만 해도 찰떡같이 배우고 익혔던 것들을 나이 든 이제 와서 버리거나 바꾸란다. 

문제는 그 바꾸라는 게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거다. 


“아빠가 자주 인용하시는 역사를 예로 들어봐요. 갑오개혁 때의 단발령이나 과거제 폐지 같은…”

“언젠가 아버지가 쓰신 글 가운데, 노예제를 폐지하니 마당에 엎드린 솔거 노비들이 ‘영감마님, 이 엄동설한에 나가 살라면 저희더러 얼어 죽으라는 말입니다.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애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곤 뒤에 비록 나가서 얼어 죽을지언정 뛰쳐나가지 못하는 저들을 비난한 대목, 기억하세요?”

“또, 과거제 폐지로 등장하게 된 정준모 장로 이야기도 아버지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요” 

변할 땐 이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게 옳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요?”


헐…

이 얘기가 그 얘길까? 

근거가 뿌리째 뽑히는 기분이다. 

죽을 때까지 그리는 못하지 싶다.

 단지 저들의 근자감을 그러려니 바라만 볼 수 있을 만큼만 바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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