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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Mar 26. 2024

수업료는 언제까지?

일머리에서 밭머리로

흔히들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자기 정당화를 위해서라도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치부한다. 

또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을 보면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라며 위로한다.


은퇴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노후 생활을 위해 서울 근교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지 3년 차다. 

첫 해는 야심 차게 고구마, 호박, 옥수수, 감자, 가지 등등을 10여 미터가 넘는 고랑을 따라 한 이랑씩 심었다. 생전 처음 흙을 만져 본 사람 치고는 수확이 괜찮았다. (주변의 평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혼자 먹기엔 턱없이 많고 주위에 나눠 줄 사람도 마땅치 않다. 

가까이는 자기네도 넘친다고 손사래고 멀리 서는 바쁘고 귀찮아서라도 사 먹고 말겠다는 반응이다. 

더 큰 문제는 수확하고 남겨진 옥수수 대, 고구마 줄거리, 호박 넝쿨 간짓대 등의 잔재들이다. 이웃의 원주민은 드럼통에 넣고 태우라 지만 그러질 못한다. 

타지에서 들어온 외지인이고 집 앞이 도로라 이목이 집중되는 탓도 있지만 어쭙잖은 환경 의식 탓에 내키질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산속에 농장을 하는 지인이 가져다 비료로 쓰겠다고 해서 어렵사리 처리했다. 다음 해는 밭을 반만 남기고 북유럽에서 유행한다는 파머 컬처(Permanent Agriculture)를 시도한다. 획일적인 이랑 고랑이 아니라 야생처럼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갖추고 각각의 자리에 맞는 식물들을 음지와 양지, 높은 곳과 낮은 곳에 배치해서 키우는 식이다. 

역시 실패다. 

수십 평의 손바닥만 한 면적이 자연스러울 리가 없다. 솔직하게는 게으르고 완전 초자인 주인 탓이다. 하여 세 번째 겨울이 지나고선 다 갈아엎고 잔디밭을 꾸릴 요량이다. 그동안 야금야금 밭을 좁혀가면서 상대적으로 잔디밭이 넓어졌는 데 그나마 풀 뽑고 잔디 베는 일은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해마다 굴삭기를 들이대고 인부를 써 가며 수업료 지불을 반복한다.


기실은 오래전부터 전공과 별도로 한학과 고전 인문학에 관심을 두면서 늘 유배자들의 삶을 동경(?) 해 왔었다. 스스로 아호를 자적거사(自適居士)라 칭하기도 한다. 중앙에서 밀려나고 권좌에서 멀어진 날 것 같은 삶. 비록 유배 온 죄인이지만 양반의 신분으로 호구지책을 위해 채마밭을 일구고, 겨울 철 냉골을 견디다 못해 땔나무를 할 요량으로 산에 오르며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이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나온 고백이 목민심서요 오우가였을까? 아무튼 궁금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제 겨우 세 해 겨울을 보냈으니 결론을 말할 때는 아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요 절반의 실패라 자평한다. 시간이 걸리고 나이 탓에 기운이 부쳐 더 오래 걸리겠지만 글머리가 밭머리로 바뀌기까지의 일머리 전환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고백을 한다. 왜?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까닭이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고백한 바 있지만 컴퓨터 운영이나 논문의 글쓰기가 안 될 때면 집중하 던 시야가 들며 나며 보는 마당의 작물이나 화초들은 노랗게 말라죽은 뒤에야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수시로 돌아보고 혹시 말랐나 싶어 흙에 손가락을 찔러본다.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수업료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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