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날아 간 USB
근 두 달여 브런치에 글 올리기를 하지 못한 듯싶다.
핑계 같은 이유인즉슨 USB 곧 플래시 메모리가 날라 간 때문이다.
아예 인식을 못한다.
인터넷을 뒤져 몇 군데 복구 업체를 접촉, 문의도 하고 방문도 해 봤지만 복구할 수 없다는 대답이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에 있을 때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사달을 겪었었다. 주로 작성 중인 논문이나 그에 필요한 참고 문헌과 자료 등이 담긴 텍스트 파일이다 보니 용량도 크지 않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무료 드라이브나 클라우드 서비스로도 충분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손톱만 한 메모리에 의지해 지내왔다.
책상이나 주머니에 여남은 개의 USB가 굴러 다닌다. 나름 색깔을 달리하고 작은 글씨로 식별하지만 이내 지워지고 색깔 구분은 까먹는다. 꼼꼼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성격 탓에 같은 논문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성한 메모리 서너 개를 오가며 모아 보면 얼추 복구가 가능하다.
정 안 되는 부분은 새로 쓴다. 이렇게 지내온 몸에 밴 게으름이 은퇴 후엔 오죽하랴. 한데 안타까움이 더 하다. 논문이 아니라 생활 기록인 탓이다. 그때의 감정을 모르니 도무지 새롭게 쓸 방도가 없다.
두 달 여의 공백은 공허가 되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 사이 ‘이 허무를 어찌할 것인가(김영민)’, ‘아침 그리고 저녁(욘 포세)’,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같은 책들을 읽었다. 우연이었을까? 덕분이라 고나 할까?
평생을 읽은 소설책이 한 줌이 안 되는 데 몇 권이나(개중에는 역시 잘 읽지 않는 에세이 집도 포함) 있었으니 말이다.
그 사이 깨닫는다.
노년이 공허한 건 뭘 해야 좋을지 몰라 서다. 그 뭔가는 은퇴 전의 일 혹은 생업과는 다르다.
아마도 뭔가는 읽거나 쓰거나 해야 한다는 현업에서의 관성일지도 모른다. 관성의 연속이라면 그 뭔가를 어떻게 일과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거부하고 아니 은퇴를 하고 나서도 명예 교수니 자문 위원이니 하면서 현장을 고수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틀린 셈이다. 다시 일을 찾으면 이 공허는 메워질까?
아니지. 공허는 공백 때문이었으니 이 공백을 메우면 공허는 사라질 거야.
아이디와 비번도 복원하고 드라이브도 개설하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