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나이 70이 돼도 같이 자전거 타자 -
– 딸과 함께한 봄날의 하루-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왔다.
윗집 인테리어 공사 소음이 너무 심해서, 하루라도 아침 늦게까지 푹 자고 가라고 불렀다.
사실 이전에는 딸아이가 집에 와서도 편안하게 시간을 갖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퇴직을 하고 나니,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토요일인데 밖에 나가자고 하니 귀찮았다. 솔직히 나가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나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딸아이에게 끌려나가다시피 해서 나갔다.
딸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쇼핑몰에 가려고 나서던 길 길가에 놓인 공유 자전거를 본 딸아이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거 새 자전거야. 진짜 좋아. 이거 타고 가자!”
사실 나도 이전에는 자전거 타는 걸 매우 좋아했었다. 처음 천진에 왔을 때에는 자전거가 자가용이었다.
외출 시에는 매일 자전거를 탔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도로에 차가 많아지고, 공기도 안 좋아져서 점점 안 타게 되었다.
결국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둘이 자전거를 타고 2킬로미터 떨어진 쇼핑몰까지 갔다.
그런데 막상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힘껏 페달을 밟아 딸아이를 따라가다 보니,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딸아이 어렸을 적,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딸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딸아이는 어느덧, 그 시절의 나와 같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젤라토 전문점 ‘野人先生(예런셴셩)’이었다. 딸아이가 북경에서 맛있게 먹었던 가게라며 천진에 있는 지점을 찾아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엄마, 이건 쌀 젤라토야. 별로 달지 않아 안 질려.”
“엄마 이건 오곡으로 만든 거래. 건강하고 담백한 맛이야.”
두 가지 맛을 골라 나눠 먹었다. 아이스크림 속 쌀알이 톡톡 씹히는 질감도 좋았고, 과하지 않은 단맛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엔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지만, 이건 좀 달랐다.
은근한 맛, 오래 남는 맛이다.
딸과 함께 먹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오는 길, 우연히 옆 가게 간판 (玉纹顺德姜撞奶 위원순더지앙통나이)과 큼지막한 사진 ‘玉纹双皮奶(위원 쌍피나이)’ 와 杨枝甘露(양즈깐루)’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玉纹双皮奶(위원 쌍피나이)’와 ‘杨枝甘露(양즈깐루)’.
쌍피나이(双皮奶)는 광동식 디저트로, 우유를 두 번 응고시켜 만든 부드러운 푸딩이다. 우유 위에 생기는 얇은 막을 살려 한 번 식힌 후 다시 가열하여 또 한 겹의 막을 입히는 방식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연유와 함께 깊고 은은한 단맛을 내는, 고소한 우유 푸딩이다.
양즈깐루(杨枝甘露)는 망고퓌레, 자몽, 타피오카, 코코넛 밀크, 생크림 혹은 연유 등을 넣어 만든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입 안 가득 시원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인 홍콩식 디저트다.
이름은 관음보살이 들고 있는 정화의 버드나무 가지와 감로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치 번뇌를 씻어 주는 단이슬처럼 이 디저트 역시 마음까지 달래주는 玉纹双皮奶(위원 쌍피나이) 와 杨枝甘露(양즈깐루)
맛이다.
그 간판을 보는 순간, 대만 유학 시절 즐겨 먹던 띠엔신(點心, 간식)들이 떠올랐다. 玉
홍떠우떠우화(紅豆豆花, 팥연두부), 뤼떠우떠우화(綠豆豆花, 녹두연두부)등
20대의 싱그럽고 충만한 꿈을 가지고 공부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딸아이 표현대로라면,
“엄마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시큰둥하더니 여기서는 눈이 반짝였어.”
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배도 부르고, 길 건너 수상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려고 들어갔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사람들은 공터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흔한 풍경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풍경, 같은 음악, 같은 춤인데 딸아이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조금 더 생기 있었고, 조금 더 따뜻한 날이었다.
한 시간 정도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올 무렵, 호숫가에 작은 찻집이 있었다.
커피를 시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잔잔한 물결, 잔잔한 커피 향.
모두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평화로운 토요일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우리 다음엔 북경에서 자전거 타자.”
“엄마, 나이 70이 넘어도 나랑 같이 자전거 타야 해.
내가 옆에서 엄마 자전거 타게 할 거야.”
딸아이는 옆에서 조잘거린다. 내가 이전에 내 엄마에게 했듯이…
딸아이는 아직도 이 엄마가 나이 들어 늙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내가 우리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엄마의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오늘 하루는 바람도, 햇살도 좋았고,
쏟아지지 않고 스며드는 감정처럼,
커피 향 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