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 밤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빠랑 같이 자요
1998년, 나는 중국 텐진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이전 한국에서 국어 논술 강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지인들의 아이 몇 명에게 국어 논술 과외 수업을 했었다. 준이라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그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 중 하나였다. 준이는 중국에서 일하는 아빠를 따라왔는데, 준이 엄마는 내가 다니던 남개대학교에서 석사 과정 중에 있었다. 중국 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국어 실력이 걱정되어 나에게 과외를 부탁했던 것이다.
준이는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다. 학교와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주말이면 가는 한인 교회가 전부인 생활이었다. 가끔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수업 중 조용히 책 한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공부해요.” 나는 웃으며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흔쾌히 대답했지만, 그 한 페이지 속에서 연관된 이야기들을 풀어 결국 한 시간 수업을 꽉 채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이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밤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빠랑 자요.” 깜짝 놀라 이유를 묻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엄마랑 자고 싶은데, 엄마는 맨날 아빠랑만 자요. 나는 엄마랑 잘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오늘 밤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빠랑 자면 나는 엄마랑 잘 수 있잖아요.”
엄마와 함께 자고 싶은 마음으로 얼마나 고심하고, 방법을 강구한 끝에 나에게 이야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준이의 순수한 마음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준이야, 그래도 아빠는 엄마 말고 다른 여자랑 자면 안 되는 거야.” 하자, 준이는 이해하기 힘들고 자기 말을 안 들어주는 선생님이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준이 엄마에게 방금 준이가 한 말을 전하며 말했다. “남편 말고, 준이랑도 같이 자 주세요. 준이가 엄마랑 너무 자고 싶어 하네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금 전 준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떠올라 혼자 웃다가 문득 내 딸 리아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네 살 무렵, 리아는 늘 나와한 방에서 자야 했지만, 그땐 아기용 침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침대에서 자고, 아이는 바닥에 이불을 깔아 따로 재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눈을 떴는데 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너무 놀라 집 안을 이 방 저 방 다 헤매고 다녔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자던 침대 밑에 들어가 그곳에서 혼자 쿨쿨 자고 있었다. 다리가 있는 침대라 아래에 공간이 있어, 작은 리아가 잠결에 기어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침대 아래를 이불로 막아 두었다.
또 어떤 날은 분명히 바닥에 먼저 재우고 잤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면 리아는 어느새 나와 남편 사이에 쏙 들어와 자고 있었다. 자다가 깨어서 엄마가 옆에 없으니 조용히 기어올라와 엄마 곁으로 와서 안긴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몸으로 잠결에 엄마를 찾아 침대를 기어오르던 리아나,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도 여전히 엄마 품이 그리운 준이나, 그들에게 엄마품은 가장 편안하고 가장 안전한 세상이었다.
“선생님, 오늘 밤 우리 아빠랑 자요.”
준이의 그 엉뚱한 제안 뒤에 숨어 있던 마음. 사랑받고 싶고, 안기고 싶고,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었던 작은 아이들처럼 어쩌면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품은 준이었고, 리아였는지도 모른다.
* 연두생각.
아이의 말은 천진하고 엉뚱한데,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어쩐지 조용히 오래 남습니다.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 말랑해지고,
그 말 한마디가 괜히 내 안을 툭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따뜻함이 있어서,
그냥 조용히 좋았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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