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기는 나 먼저 죽으면, 새 장가갈 거야?

by 초록 향기

2-9. 자기는 나 먼저 죽으면, 새 장가갈 거야?

향주머니 ( 香包)


박사과정 학점 중 유학생에게는 영어 수업이 필수였고 전공이 다른 학생들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토요일 아침 8시로 수업시간이 정해졌습니다.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던 제게 아침 8시 강의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잠을 못이루는 날이면 거의 잠을 못자고 있다 두세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에 가서 앉아 있으려니 말입니다.


첫날 수업에 들어가니 50여 명의 교실이 꽉 차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라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유학생뿐만 아니라 중국 학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나는 중국학생이 우리와 같이 영어 수업을 듣는 것이 이상하여 옆에 앉아 있는

한 여학생에게 왜 이 수업을 듣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고향이 흑룡강성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가 가까워 어릴 적부터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그래서 박사 입학시험에서 외국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로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유학생들처럼 영어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쯤 지나자, 오는 대로 앉던 자리가 거의 지정석처럼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 저는 늘 맨 앞줄에 그 친구 옆에 앉게 되었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주말에 여행을 다녀왔다며 저에게 향주머니(香包)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빨간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향주머니는 은은한 향이 나면서도 앙증맞은 모양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향주머니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향주머니는 중국 전통에서 악귀를 쫓고 건강과 복을 비는 부적으로 사용되며,

천으로 만들어 향이나 약초를 담아 몸에 지니거나 문고리, 가방 등에 달아 놓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단오절에 많이 사용되며, 사랑과 평안을 기원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예쁜 문양과 색으로 선물이나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많으며, 쓰촨·운남·광시 등 소수민족 지역에 가면 전통공예품으로 자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향기야, 네게도 사랑이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한국은 인구가 5천만 명도 안 된다면서?

그 적은 인구 속에서 굳이 짝을 찾지 말고, 우리 중국 12억 인구 속에서 찾아보면 어때?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숫자로 보면 그게 더 희망적이겠다.”


그러나 속으로는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12억이라는 숫자만 가지고 말하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준 향주머니를 가져와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향을 맡다 보니, 12억 인구에서 짝을 찾으라는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문득 그가 생전에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밤, 그와 함께 TV 연속극을 보다가

주인공의 남편이 죽는 장면이 나와 여자가 슬퍼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심코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야,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자기는 다시 새장가갈 거야?”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장가가야지. 죽은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죽은 사람을 왜 생각하냐? 이미 세상 떠난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 내가 새 장가간다고 하니 억울해?

그러니까 억울하면 죽지 말고 끝까지 내 옆에 붙어 있어. 그러면 되잖아, 알았지?”


“무슨 대답이 그래.

거짓말이라도 ‘너 죽어도 나 절대 장가 안 간다’고 말해 주면 안 돼?

서운하잖아.”


제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자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거짓말을 왜 해.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약 오르지? 배고프다, 우리 밥 먹자.

그러니까 나 새 장가가는 거 억울하면,

먼저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 내 옆에 있어야 해.”


만약 그때 그가 저에게 그렇게 물었다면,

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시집 안 가고 당신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나도 당신처럼 ‘죽은 사람은 생각할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을까요?


만약 제가 먼저 죽었더라면,

그는 정말 죽은 사람은 생각할 필요 없다며

저 없이 잘 살았을까요?


아니면,

지금의 저처럼

그도 아파하고 울고 있었을까요?


배우자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돼 재혼하는 사람들을 보며

처음에는 부럽기조차 했습니다.

사별 초기에는 그렇게 빨리 재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어차피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과정이라면

차라리 그렇게 죽은 사람을 빨리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이를 악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죽은 사람은 생각할 필요 없어.”


가 생전에 했던 말을 따라, 나도 그렇게 생각 보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어느새 또 그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내가 새 장가가는 게 억울하면 죽지 말고 내 곁에 꼭 붙어 있어” 라고 하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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