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 태산(泰山)에서 내 인생을 마주하다 -

by 초록 향기


2-10.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 태산에서 내 인생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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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과,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시험을 보고 입학한 중국 친구들과 함께 듣는 영어 수업은

처음에는 아침 일찍 나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중국 친구가 생기면서

토요일 아침 수업에 가는 길이 조금은 덜 힘들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다음에 집에 갈 때 기차를 타고 자기 고향인 흑룡강 근처까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집에 가는 데 이틀 가까이 걸린다고도 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중국은 정말 크고 넓은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기차를 갈아타며 이틀씩이나 걸려 집에 가는 그 친구를 보면서,

배를 타고 가도 26시간, 비행기로는 2시간 거리인 나는 얼마나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태산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한 시 한 수가 떠올랐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한국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 시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읊조렸습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바로 그 산, 태산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얼마나 걸리느냐"라고 묻자, 그 친구는 "아주 가까워!"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중국 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이라

가깝다고 하니 한 시간 이내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중국 친구와 함께 가니 사기당할 염려도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혼자보다는 무섭지 않으니

큰 걱정 없이 따라나서기로 했습니다.


산 위에서 잘 것이고, 산 위는 추울 수도 있으니

옷을 단단히 챙겨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10월 중순이라,

낮에는 햇살이 제법 따갑던 때였습니다.

저는 조끼도 챙기고 나름 이것저것 준비를 했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 학교 안의 기차표 대행소에 가서 표를 끊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그 친구는 "아주 가까워!"라고 했지만,

막상 천진역에서 기차를 타니 5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거리’의 개념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한 ‘가깝다’는 거리는 다섯 시간이었습니다.


태안(泰安) 역에 도착하자 친구가 물을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은 산 밑에서 사야 해. 태산 위에선 비싸.”

친구의 말에 따라 물 네 병을 사서 배낭에 넣었습니다.

묵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선택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물을 산 후, 우리는 태산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 있을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버스 안내원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싸우는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무슨 표 값이 어쩌고 하는데 저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라고 묻자,

태산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테니

버스비를 돌려달라고 했고,

안내원이 돌려주지 않아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일단 내리자고 말렸습니다.

그래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버스비가 얼마냐고 하니 1원이었고,

택시는 얼마냐고 물으니 5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내가 낼게. 그냥 택시 타고 가자"라고 말했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태산 입구까지 갔습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태산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자

친구는 제 학생증을 달라고 하며

입장권을 사 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가방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산을 바라보며

‘이게 정말 그 태산이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처음 배웠을 때,

언젠가 정말 태산에 오르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 태산 입구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해가 저물 무렵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잠잘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친구는 호객꾼들과 흥정하기 시작했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산 위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바닥에 중국 군복 외투를 쌓아두고

하룻밤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벌에 10원이라고 해서 우리는 두 벌을 빌려 입었습니다.

기온이 너무 떨어져 추워지자

그 옷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흥정한 숙소를 따라가 보니

쇠로 된 2층 침대가 양쪽으로 놓인 6인실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냥 시멘트 바닥 창고에

쇠창살 2층 침대를 세 개쯤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밤중에 꼭 한 번은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습관이 있었기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어두운 골목 끝까지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도저히 그곳에서 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여기는 1인당 얼마고, 화장실 딸린 방은 얼마야?”


이곳은 1인당 20원이고,

화장실 딸린 방은 150원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못 자. 화장실 딸린 방으로 가자. 내가 돈 낼게.”


방을 몇 군데 돌고 나서야

겨우 빈방 하나를 찾았습니다.

허름했고 어두운 방이었습니다.

순간온수기는 있었지만

너무 낡아서 뜨거운 물이 나오다 말고

갑자기 찬물이 나올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겁이 나서 샤워는 하지 못하고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수건으로 몸을 닦았습니다.


난방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긴 10월 중순이니

난방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우리는 빌린 군복 외투를 입고

양말까지 신은 채,

서로 껴안고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5시.

아직 캄캄한데, 누군가 사람들이 자는 방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일출을 보러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

깜깜한 산길을 걸었습니다.


그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해가 뜰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산 아래를 바라보며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색 구름이 눈앞에서

바람을 따라 모였다 흩어졌다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해가 뜨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막연히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연히,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동이 트는 걸 기다리는 걸까요?

오늘은 동이 뜨지 않아도 내일은 뜰 텐데.

오늘과 내일이 다른 것이 무엇이기에,

무엇을 보기 위해

이 캄캄한 새벽에

사람들은 이토록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내 발아래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습니다.

그게 내 현실인 것 같았습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내 삶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잿빛 구름이 흩어지고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해 못 본다.”

“일주일째 해가 안 떴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결국 그날,

해는 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은 밝아왔습니다.


구름 너머로

건너편 산이 보이기 시작하자

저는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태산에 오게 된다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좋은 방에서 자야지.”


그렇게 우리는 그날 새벽에 일출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커다란 대파를 넣어 구운 총요우빙(葱油饼,파전)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고

태산을 내려왔습니다.

좀더 따스한 다음 태산산행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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