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기행 1- 도시는 때로 단어로 기억된다.

by 초록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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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때로 단어로 기억된다.


대련이라는 도시는 내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가 본 것처럼 친숙한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중국 천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가 기류 이상으로 인천공항을 가다가 회항해 대련 공항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은 낯설고도 어딘가 외국적인 느낌이었다. 방송을 통해 “따롄(大连)”이라는 도시 이름을 들었지만, 그때의 대련은 그저 몇 시간 비행기에서 머물렀다 떠난 공항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마음먹고 대련을 찾았다.

30여 년을 중국에서 살았고, 천진과 북경 같은 대도시에서 비행기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국과 매우 가깝게 느껴졌었는데, 대련의 실제 비행시간은 55분 남짓이었다. 중국에서 오래 살아온 나에게도 이 ‘1시간의 거리’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중국은 매우 넓고 멀 것 같은 나라지만, 중국 대련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대련에 도착한 후 성해광장 근처에 예약한 호텔로 갔다. 겨울바다였지만 성해광장에서 성해공원으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는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바닷물은 놀랄 만큼 맑았고,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바다를 끼고 형성된 도시의 리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대련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성게만두집도 찾았다.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맛본 성게만두는 분명 특별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중국에서는 해물이 전반적으로 비싼 편이고, 신선함이나 접근성만 놓고 보면 오히려 한국에서 해산물을 먹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대련에 가면 꼭 해물을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한국인으로서는 꼭 정답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대련 시내를 다니며 내 눈길을 끈 것은 음식보다도 거리의 간판들이었다.

유난히 많은 슈퍼마켓 간판에 ‘生鲜(생선)’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优品生鲜超市’, 우수한 상품을 판다는 뜻의 ‘优品’에 신선식품마트라는 ‘生鲜超市’가 붙은 이름이었다. 한자로 읽으면 자연스럽게 ‘生鲜’을 ‘생선, 물고기’를 떠올리게 되는 단어지만, 중국어에서의 ‘生鲜’은 날것으로 먹는 신선한 생선, 새우 등의 수산물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살아 있는 듯 신선한 식재료, 갓 들어온 음식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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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중국어 생활권에서 살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대련에서는 ‘新鲜(신선하다)’이라는 단어보다 간판에는 ‘生鲜’이라는 단어를 슈퍼마켓 간판에 즐겨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즉 ‘生鲜超市’는 생선이 있는 슈퍼가 아니라 신선한 재료들이 있는 슈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었다.

그런데 왜 대련에서는 슈퍼마켓 간판에 이렇게 ‘生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쓸까?

어쩌면 이 도시는 바다를 끼고 살아온 도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항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매일같이 바다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에게 신선함은 그날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었을 것이다. 오늘 잡은 것, 방금 들어온 것, 살아 있는 것. 그런 생활의 요구가, 감각이 자연스럽게 중요한 언어가 되었고, 간판이 되었을지 모른다.


대련의 슈퍼마켓 앞에 붙은 ‘생선(生鲜)’이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상업용 문구가 아니라, 이 도시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서처럼 느껴졌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도시의 기억, 신선함을 삶의 기본값으로 여겨온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대련은 내게 도시를 읽는 또 하나의 방식을 남겨주었다.

풍경이 아니라 단어로 기억되는 도시.

어떤 도시는 음식으로 남고,

어떤 도시는 이미지로 남는다.

그리고 대련은,

내게 ‘생선(生鲜)’이라는 단어로 오래 남을 것 같다.


대련 성해해변


2025년 12월 조용한 크리스마스, 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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