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에서 만난 청년 안중군
대련기행 2 – 여순의 겨울, 그가 앉아 있던 자리
부제: 여순에서 만난 청년 안중근
대련에 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고, 아니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여순일러감옥구터(旅顺日俄监狱旧地)와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관동법원구터(旅順日本關東法院旧址),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여순박물관(旅顺博物馆)까지 이곳들은 하나의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인에게는 마음으로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처럼 이어진 장소들이다.
성해광장(星海广场) 근처 호텔에서 디디(滴滴)로 차를 타고 먼저 여순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성해만대교(星海湾跨海大桥)를 건넜다.
바다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성해만대교 위에서 보는 겨울 바다는 유난히 고요해 보였다.
한참을 가다 보니 대련외국어대학도 지나고 있었다. 여순으로 가는 길 내내 바다 전망을 낀 집들이 이어졌다.
대련은 한때 중국 동북 3성 가운데 가장 ‘세련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진 곳이었다.
은퇴하면 살고 싶은 도시, 바다를 낀 휴양 도시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자본이 몰려들었고,
2010년대 초반부터 해변을 따라 고급 주거단지와 리조트형 아파트들이 빠른 속도로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겨울의 해변은 달랐다.
공사가 멈춘 채 그대로 서 있는 건물들,
입주가 다 되지 않은 듯 인적이 없는 리조트와 별장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 바다 앞에서 더없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여순으로 가는 이 해변은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30도가 넘는 날이 일주일 남짓이라는 쾌적한 날씨 덕분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피서를 즐기는 곳도 바로 대련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해변가에는 텅 빈 숙박시설들과 문 닫힌 상점들 사이로 썰렁한 바람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여름이면 북적거릴 해변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택시는 박물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마침 가늘게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여순박물관(旅顺博物馆)은 중국인들에게 일제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기억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일본 관동도독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이곳은
근대 중국이 겪은 굴욕과 저항을 되새기는 애국주의 역사 현장이자
중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이어서 우리는 여순일러감옥구터(旅顺日俄监狱旧地)로 향했지만
아쉽게도 내부 공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다는 일본관동법원 구터(日本关东法院旧址)로 갔다.
후에 병원 건물로 사용되던 공간의 일부가 법정과 전시관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마침 조선족 직원의 안내가 시작되었고,
이미 와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섯 명과 함께 설명을 들었다.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가 실제로 재판을 받던 법정이 재현되어 있었고,
당시의 사진과 기록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글 자막이 나오는 영상 자료도 시청할 수 있었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앉아 있었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차가운 실내공기보다 더 차갑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라를 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타국의 법정에 앉아 재판을 받던 서른한 살의 청년 안중근.
그가 마주했을 그 겨울의 차가운 공기,
바닷바람까지 뚫고 들어왔을 감방의 벽,
혹독한 추위 속에서 이어졌을 긴 밤의 고뇌와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금도 여순은 크지 않은 도시인데
그 시절의 여순은 얼마나 더 적막하고 고요했을까?
전시장 벽에 걸린 나무 책상 사진을 바라보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처연한 모습으로
《동양평화론》을 완성하기 위해 한 자 한 자씩 써 내려가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형용할 수 없는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너무도 추웠다.
숙연해졌다.
한쪽에는 당시 사용되던 고문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설명을 듣는 내내 법정 안은 몹시 추웠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 관동법원에는 난방조차 없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이 추위가 단순한 겨울의 추위가 아니라
그 시대의 한기처럼 느껴졌다.
기념품 숍에 들러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다룬 책 두 권을 샀다.
우리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큰 칭찬을 해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관동법원구터에서 택시로 10분도 안 돼 여순역에 도착한 뒤
환승 한 번으로 성해광장역까지 연결되었다.
지하철 안에 앉아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시 떠올리다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이라도 이 여순에 와서
그가 떠난 길을 잠시나마 함께 걸었다는 사실이
작은 애국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관동법원구터에서 나와
다시 매서운 겨울 공기 속으로 걸어 나올 때,
마치 그 차가운 감옥에
청년 안중근의 혼을 남겨두고
나만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그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까?
이역만리타국의 감옥에서
오직 자유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던 그가 볼 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가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모습일까?
하얀 눈발이 흩날리던
여순의 겨울 오후 하늘은
그렇게 오래도록 차갑게 내 마음속에 남았다.
2024년 12월 26일 여순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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