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 여행 3-도화시장에서 그리고 귀국 길에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여행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저녁 비행기라서 늦잠을 자기에도 좋았고, 늦을까 조바심치며 오전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 너무도 편했다. 호텔의 조식 시간은 11시까지여서 한껏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대련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이 도시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하고 싶었다. 검색 끝에 찾은 곳이 도화시장(桃花市场)이었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이기도 하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아 현지인들이 장을 보는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 뒤,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우리는 도화시장으로 향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시장의 규모는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생선과 채소, 고기와 야채 가게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고,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생활의 온도가 느껴졌다. 시장 밖 노점에서는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생선을 아주 싸게 팔고 있었다.
우리는 시장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대련까지 왔으니 뭔가 해산물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이곳에서는 해물을 사서 가지고 가면 ‘가공비(加工费)’라고 써 붙인 식당에서 쪄 준다고 했다. 즉 찜비를 받는 것이었다. 참게를 사고, 아주 커다란 새우도 한 마리 샀다. 몇 군데 식당을 돌아보니 뒤쪽에 있는 만두집이 의자도 많고 널찍해 앉아서 식사하기 좋아 보였다. 만두집에 들어가 우리가 사 온 참게와 새우를 쪄 달라고 부탁하자 인민폐 10원(한화 약 2천 원)을 받았다.
마침 그곳에서는 마라탕과 만두를 함께 팔고 있었다. 야채만 골라 마라탕 한 그릇과, 한국인 입맛에 맞는 돼지고기와 배추소를 넣은 만두, 달걀과 부추소를 넣은 만두를 시켰다. 푸짐한 상차림이었다.
천진에서는 추석 전후에 참게를 많이 먹는데 그 기억이 떠올라 그냥 참게를 샀다. 새우는 너무 커서 한 마리만 샀는데, 이건 좀 질겨서 맛은 별로였다. 차라리 작은 살아 있는 새우를 샀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크기만 보고 혹하는 마음에 새우를 산 나를 후회했다.
중국 북방지역은 만두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젊은 여행자들이 비싸지 않게, 배부르게, 일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프런트에 맡겨 두었던 짐을 찾기 전, 호텔 화장실을 한 번 더 사용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이 화장실 공간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1층 홀에 준비해 둔 보이차를 마시며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시간에 호텔 앞 해변가를 한 번 더 걷기로 했다. 해변으로 나가는 길에 만난 색동실 기둥들. 겨울 바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기둥들이라도 따뜻해지라고 감싸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어떤 행사를 위해 예쁘게 꾸며 놓는 것 같았지만, 알록달록 그 색들이 괜히 마음을 데워 주는 것 같았다.
겨울바다였지만 물은 맑았고, 마침 토요일이라 주말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겨울 바다에 맨몸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는 사람이 있어 걱정스러움과 신기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닷가 카페에 잠시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여행의 마지막에 마시는 커피는 늘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과, 이제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실감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대련은 한국과 너무도 가까운 도시였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언어도 생활도 삶도 너무도 달랐다.
대련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 시간대 국제선은 서울 인천으로 가는 남방항공 한 편 뿐이었고, 공항 안에서는 거의 한국말만 들렸다. 주변을 둘러봐도 중국어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탑승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갑자기 한국이 훅 하고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중국의 공항은 북경이나 상해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국내선이 국제선보다 훨씬 크고 활기차다. 수많은 지역 노선과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비행, 식당과 사람들로 가득 찬 국내선 터미널과 달리 국제선은 단 한 편의 비행기를 위해 조용히 불을 켜고 있었다. 면세점만 열려 있을 뿐, 식당은 한 곳도 없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릴 카페도 보이지 않았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자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한 시간 남짓 날아가면 다시 한국이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던 나에게 대련은 더 이상 ‘외국’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경은 존재하고, 그 경계 위에서 우리는 늘 다른 감정으로 오간다.
짧았지만 밀도 있었던 대련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도화시장에서의 한 끼, 겨울 바다를 따라 걷던 시간, 그리고 조용한 국제선 공항의 풍경까지 , 여유롭게 보낸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