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생리증후군이라는 이름의 병
지도교수님을 뵙고 나니 논문완성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 것 같았고,
조금 더 참고 열심히 쓰다가 보면 12월에는 졸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우울함과 좌절감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불면으로 낮에는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책을 보아도 도저히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은 캄캄한 밤처럼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밤새도록 울어야 했습니다.
통곡하다가 진이 다 빠지면 갑자기 창가로 달려가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창문을 열고 아래를 보면
이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나 이대로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
그냥 눈 감아 버리고 싶다.
그냥 잠들고 싶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지? 왜 이러지?’
고개를 돌리니 주방의 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건 분명 내 마음이 아니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다 나 정말 사고를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밤새도록 그렇게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와 싸우다가
날이 밝을 무렵이면 지쳐 잠이 들곤 했습니다.
하루 이틀밤도 아니고, 너무 힘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이곳저곳을 검색을 하면서 헤매다
정신과 의사이신 배종훈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아픈 사연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힘들어하는 아내,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식의 고민과 ,
실연당한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삶의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빠짐없이 읽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 나만 아픈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색깔만 다를 뿐,
저마다의 다른 색채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지.
그러다 우울증 자가진단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항에 따라 체크해 보니
심각한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아, 내가 우울증이구나.
신경정신과는 미친 사람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마음이 병이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약한 신앙에 매달려 보기도 했고
글 한 줄 한 줄 밑줄 그어 가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내 정신은 이미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제 상태를 자세히 적어 메일을 드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병이라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병이라면
약물로라도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 같았습니다.
밤마다 마지막 인양 책상을 정리하고
유서를 쓰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는 내 모습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짧은 답장이었지만
선생님의 메일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약을 보내주었고
하루 세 번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으면 답답하던 가슴이 편안해지며
잠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졸려 책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더니
약 성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조절해서 먹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약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약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몸의 특징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리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쯤
그 증상이 극도로 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극도의 불안과 , 우울, 분노, 억울함이 몰려와
밤새 울며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병명은
‘생리증후군’이었습니다.
원인도 명확하지 않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부부가 이 문제로
이혼 위기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매달 찾아오는 이 전쟁이
참으로 큰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방법은 없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울고
슬프면 슬퍼하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향기야, 이건 네 마음이 아니야.
지금 너는 병이 난 거야.
곧 지나갈 거야.”
달손님 전에 찾아오는 이 무서운 손님은
마치 나를 절망으로 끌고 가는 악마와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