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밥 먹으러 와라.

by 초록 향기

2-17. 밥 먹으러 와라

- 미령 언니와 함께한 따뜻했던 시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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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언니와는 석사반에 입학해 유학생들의 필수 과목인 ‘어문(語文)’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저와 달리 언니는 이미 결혼을 했고 학교 밖에서 살고 있었기에 자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 ‘미리’의 방에서 언니를 개인적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미령 언니는 제 친구 미리의 대학 학과 선배였습니다.


그 후 제가 천진 남개대학 박사반에 유학을 오면서 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언니 역시 남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공통 인연인 친구 미리가 있었고, 대만 유학 시절 함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금세 가까워졌습니다.


대만 유학 시절, 친구 미리는 언니 집에 자주 놀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낯선 도시 중국 천진에서 다시 학과 선후배로 만나게 되자 우리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해졌습니다.


언니는 그사이 아이가 셋이나 생겼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형부’라고 불렀던 사람, 언니의 남편은 당시 천진 중의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뒤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박사반에 진학한 상태였습니다.


형부는 학교를 다니면서 집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침을 놓고 한약을 조제하며 생활하고 있었고, 언니네 집은 늘 한약 냄새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한국인 환자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느 날 형부가 제 맥을 짚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야, 향기야. 이 맥으로 어떻게 숨이 붙어 있냐.”


맥이 잘 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제 몸과 마음은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며칠 뒤 언니는 조용히 보약 한 재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향기야, 약 먹고 기운 내서 공부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울컥했습니다.

낯선 외국 땅에서 언니의 다정한 한마디가 또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니는 가끔 제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밥 먹으러 와라.”


언니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니는 음식 솜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꼭 중국식 반찬 두세 가지를 만들어 함께 내놓았습니다.


따뜻한 집밥과 향긋한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어지던 대화들.

형부는 차에 조예가 깊어 언니 집에는 늘 향이 좋은 우롱차나 녹차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있을 때만큼은 저는 더 이상 가난한 유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언니와 형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저 평범하지만 따뜻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니는 박사 논문을 꼭 마무리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셋을 돌보며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결국 논문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언니는 대학 시절부터 재주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재학 중에는 교수님과 함께 KBS 중국어 교육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중국어 실력은 물론 발음과 억양도 무척 좋았습니다.


연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언니는 졸업 후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지금의 형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학업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석사 졸업도 많이 늦어졌다고 했습니다.


공부는 언니에게 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완의 꿈이었습니다.


박사반에 입학한 뒤 언니의 지도교수님이셨던 왕달진 교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왕 교수님의 제자이자 학과장이셨던 제 지도교수님이 언니의 지도교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니와 저는 같은 사문(师门)이 되었습니다.


언니의 상황을 알게 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아이도 셋이고 남편도 있다. 이 논문을 쓰는 시간이 네게는 고통일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을 내려놓아라. 그래야 네가 편해진다.

그러나 향기는 다르다. 향기는 내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저는 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신 교수님의 마음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밤이었습니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향기야, 우리 지금 안산시따오 카페로 맥주 마시러 간다. 너도 조금 있다가 나와라.”


그 당시 천진은 큰 눈이 오면 교통이 거의 마비되었습니다.

버스는 끊기고 택시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니와 형부는 택시가 안 잡힌다며 그냥 눈 오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도 걸어 나오라고 했습니다.


카페는 집에서 가까웠기에 외투를 챙겨 입고 하얀 겨울 밤길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밤에 맥주 한잔 하자고 불러 주는 언니 부부가 참 고마웠습니다.


하얀 눈길을 걸어 도착하니 언니와 형부는 이미 와 있었습니다.

맥주를 시키고 안주를 곁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밤, 따뜻한 조명 아래의 시간들.

그날의 공기와 언니의 웃음, 형부의 다정한 말투는 지금도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언니 집 거실에는 젊었을 때 찍은 언니의 액자 사진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언니는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중국어는 물론 붓글씨도 잘 썼고 동양화도 잘 그렸습니다.


그 재주들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주부로 살아가는 언니의 삶이 가끔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언니는 박사 논문에 대한 미련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추운 겨울, 낯선 이국 땅에서

그래도 제가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힘들 때 찾아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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