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by 초록 향기

2-19.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png

겨울이 정지된 상태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봄은 과감하게 나아가는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2월 중순부터 천진외국어대학 한국어과에서

《중한번역》 과목과 《한국어 강독>》강의를 맡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번 《한국문학》에 대한 특강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천진외국어대학 한국어과는 일본어과 소속의 3년제 전문대학이었습니다.

중국 대학은 아침 8시부터 1교시가 시작됩니다.

중국 학생들의 대학 생활은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기에

생활이 단조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침 8시 강의를 가려면 집에서 7시 20분에는 나와

겨울 아침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했습니다.

학교 강의실 건물 앞에는 교도 선생님이

지각하는 학생들을 체크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저도 8시가 다 되어 도착하면

괜히 그 선생님의 시선이 감시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습니다.


처음 한국어 강의는 긴장이 되고 떨렸습니다.

더군다나 내 입을 통해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을 알린다고 생각하니

내 목소리와 내 한마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첫날 강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

잠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학생들이 복도에서

책을 들고 한국어 문장을 외우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시간표를 보니 주요 과목들이 모두 회화 위주의 실용 과목이어서

나는 한국 문학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시도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강의에 단군신화를 이야기해 주고

곰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표현을 설명하자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전날 밤에는 불면증으로 혼자 아픔을 끌어안고 힘들어했지만

아침이 되면 학생들 앞에 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했습니다.

어젯밤 가슴을 움켜쥐고 아파하던 내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가족도 모두 함께 중국에 와 있습니까?”

“천진에는 오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나는 남개대학에서 공부하며 논문을 쓰느라 혼자 있고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가족, 내 가족.....

그 안에는 당연히 남편도 아이도 있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학생들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천진외국어대학 강의를 나가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강의는

내 마음을 조금씩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김소월 님의 '진달래 꽃'을 외우게 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설명하며

울컥울컥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아 참고 또 참았습니다.


중국어로 번역해 주며

한국어로 표현된 반어법과 절제된 슬픔을

학생들이 느낄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습니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래.

나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무정하게 떠난 님을

가슴에서 비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으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놓아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시인처럼

나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렇게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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