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왜 다들 서 있지?

by 초록 향기

2-20 왜 다들 서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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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도 천진사범대학교에 강의를 가던 날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강의가 있어 7시 20분쯤 집에서 나섰습니다.

우리 집에서 천진사범대까지는 택시로 15분 거리였지만,

버스를 타면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배차 간격도 길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택시비는 한 번에 10위안, 왕복이면 20위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강사료는 시간당 20위안.

2시간 수업을 하면 40위안을 받았으니,

택시를 이용하면 왕복 택시비로 한 시간 강사료를 쓰는 셈이었습니다.


10위안만 들고 시장에 가면

돼지고기 한 근에 7위안 정도,

달걀 한 근(500그램)은 3위안이 채 되지 않아

채소까지 사면 양손에 들고 집에 가기도 벅찰 만큼

많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도 아낄 겸, 시간도 절약할 겸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면 30~35분이면 학교까지 도착했으니까요.

그날 아침도 자전거를 타고 천진사범대로 향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거리를 지나던 어느 순간,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만 혼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교통정리를 하던 분이

나를 향해 손짓하며 호루라기를 강하게 불었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저는 사거리 한복판에서 자전거에서 내려 멈춰 섰습니다.


그 넓은 사거리에서

모두가 한순간에 저를 쳐다보는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교통정리를 하던 분이 물었습니다.

“빨간불인데 왜 그냥 가요?”


그때는 신호위반으로 걸리면

벌금 50위안을 내거나

1시간 동안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천진사범대학교에서

8시부터 강의가 있어 급히 가는 길입니다.

저는 남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입니다.

강의 내용을 생각하다가

빨간 신호등을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는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빨리 가요.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요.”


그날의 저는

자전거 위에서 생각에 잠긴 채 달리고 있었고,

세상의 빨간 불도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은 무언가에 골몰하면

밥 먹는 것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늘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아랫집에 살던 집주인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향기 씨, 시장에 가다가 몇 번 봤는데

아는 척을 하려고 해도

향기 씨는 자전거를 세워 놓고

다른 물건은 보지도 않고

오이면 오이, 두부면 두부만 사서

자전거 바구니에 올려놓고

옆도 안 쳐다보고

정신없이 두두두 가대요.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다니는지....

늘 여유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랬습니다.

늘 그렇게 논문을 빨리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장에 가면 오이를 사면서

옆에 더 신선한 채소가 있나

천천히 둘러볼 수도 있었을 텐데,

사려고 한 물건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 골몰해

심지어 빨간 신호등조차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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