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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e Oct 29. 2021

위스키. 그냥, 마시고 싶은 거 마셔요

추천과 가성비에 휘둘리지 않는, 편견과 독단과 함께하는 위스키 라이프

폭탄주, 단란주점, 있는 놈들이나 마시는 술로 여겨졌던 위스키.
위스키는 수년 사이에 꽤나 친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맥주랑 소주, 막걸리. 잘해야 매실주 정도 놓여있던 고깃집에도 심심치 않게 하이볼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유튜브나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가성비 위스키, 대세 위스키, 위스키 추천 같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죠.

3,4년 전부터 위스키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이 많이 늘었다 @Google Trends



편견과 독단으로 즐기는 위스키 한잔

저는 일본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위스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매번 사람들과 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었던 게 첫 번째. 새벽에 잠이 안 올 때, 들를 수 있는 바가 집 가까이 있었던 게 두 번째 이유였죠.


처음부터 뭘 알고 마신 건 아니었지만, 오늘 마셔본 위스키가 맘에 들었다면 다음번에는 마스터에게 추천을 받아 비슷한 느낌의 위스키를 마셔보기도 했고, 순전히 병에 그려진 동물(e.g. 사슴이 멋있는 달모어, 매년 십이간지 한정판 라벨을 만드는 산토리 올드)가 멋있어 보여서 시키기도 했고, 누가 사주는 날에는 "21", "30"이 쓰여있는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어요.

80은 족히되보이던 마스터가, 땅콩을 던져주던 오사카의 모 바

그렇게 한 번 두 번 위스키를 마셔보면서 궁금한 것들도 찾아보다, 조금 더 아는 척하고 싶어서 위스키 검정 자격증도 땄지만, 위스키는 직접 마셔보며 느끼는 게 거의 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 같아요.


내가 아무리 좋다고 추천하는 위스키가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위스키가 될 수도 있고, 전에 마셨을 때는 그렇게 인상적이던 위스키가 오늘은 너무나도 별로일 때도 있고는 하니깐요. (특히 몰트 위스키를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마시면, 한동안은 위스키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대세와 소유에 집착하는 우리

아무리 위스키가 좋다고 썰을 풀어도, 위스키가 비싼 술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기껏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이 위스키가 내 취향이 아니었을 때 겪게 될 짜증과 실망감은, 소.막.맥이 별로였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않을테니깐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국내 위스키 커뮤니티를 보면 많은 분들이 고수(?)의 추천이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대세 위스키"를 알고싶어하고, 이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가성비! 추천!


나아가서는 한정판 위스키를, 특정 브랜드 라인업을 가지는 게 목적이 되어버린 분들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시는 위스키가 아니라, 소유하기위한 위스키가 되어버리는 거죠:(


돈은 한정되있고 우리는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동물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되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기호의 영역에 타인의 모범답안이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소장가치를 지키려면, 그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돼!


공룡알도 깨고, 위스키도 따서 마셔요!

뜬금없지만, 여러분은 존 호너씨를 아시나요? 고생물학계에서 괴짜학자로도 유명하고, 사생활도 여러모로 이슈가 되는 사람이죠.


그는 공룡알 짤로도 유명한데요. 다들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게 다루는 수천만년 된 뚝배기공룡알화석을 쿨하게 망치로 쾅 깨버리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어찌보면 괴팍할 수 있지만, 생일에 받은 선물이 소중하다고해서 평생 포장도 뜯지않고 가지고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무언가의 진가는 실제로 써봐야 알 수 있는 거겠죠.

공룡알도 쾅! 뚝배기도 쾅! 위스키도 쾅!.

위스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대세에 휘둘리지말고, 전문가의 테이스팅 노트에 쓰여있는 (먹어본 적도 없는) 육두구 향을 맡은 척하려하지 말고, 근처 대형마트나 주류전문점에 가서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병이 이쁜 위스키를 사와서, 적당히 주스잔에 따라서 입으로 천천히 흘려넣는 것. 그렇게 내가 가진 취향(a.k.a 편견과 독단)을 찾아가며 점점 나만의 위스키 지도를 넓혀가는 게, 안그래도 내 주관대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조금은 기쁨을 주지않을까요?


설령 내가 고른 위스키가 취향이 아니라도 위스키는 2년은 거뜬히 보관가능하니까 집에 놀러온 친구한테생색을 내세요!!






appendix. 위스키를 편하게 마시기 좋은 곳

혹시라도 일신상의 이유로 집에 위스키를 구비할 수 없다면, 콧대 낮은 바에서 위스키를 마셔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클래식한 바는 너무 무서워~


1. 부산 동구. 모티바

    산복도로 위 주택가에 위치한 아지트 같은 바입니다.

    메뉴가 없고 마스터가 알아서 추천해줍니다. 심지어 안 비쌈.

2. 서울 마포구. 바안단테

    전체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종류가 많아, 병 디자인으로 초이스가 가능해요.

3. 서울 관악구. 테일오브테일스

    먼슬리로 오천원 혹은 만원에 제공하는 위스키가 있어서, 일단 마셔보는 데 의의를 둔다면..

4. 서울 어딘가. Je's Whisky Seminar

    제가 가끔 하는 모임입니다.

    일단 뭐가 뭔지 알고나서 마시고 싶다면,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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