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양 Nov 09. 2021

[책] 지구 끝의 온실

#6

지구 끝의 온실


'우리가 빛의 속도록 갈 수 없다면'의 저자 김초엽의 최근 책.

우빛속이 단편 모음집이었다면 '지구 끝의 온실'은 호흡이 긴 장편소설이다. 우빛속을 즐겁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은 또 어떤 내용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줄거리>

1부. 모스바나

 미래의 어느 시점, 정체 모를 '모스바나' 라는 식물이 폐허 도시 해월에서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며 문제를 일으킨다.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원 아영에게 모스바나를 조사하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아영은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생소했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가는 식물 사이트에 조언을 얻을 겸 모스바나에 대한 글을 올린다. 그러던 중, 모스바나가 푸른빛을 내뿜는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아영의 머릿 속으로 어린 시절 알았던 이상한 노인 이희수의 정원에서 본 푸른빛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실마리 속에서 어느날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랑가노의 마녀들'을 찾으라는 메일을 받게 된다. 아영은 아디스아바바 심포지엄에 참석할 겸 랑가노의 마녀였던 나오미를 인터뷰하러 에티오피아로 떠나게 된다. 아영을 만난 나오미는 선뜻 말하기를 주저하면서도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2부. 프림빌리지

 나오미의 이야기는 더스트 시대에서 시작된다. 어느 한 연구소에서부터 '더스트'라는 물질이 퍼져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더스트 시대에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은 '돔'이었는데 일종의 막이 덮힌 도시로 거주권이 있어야 주민이 될 수 있었다. 거주권은 돔에 도움이 되거나 가치가 있는 사람 한정으로 부여되었다. 약자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돔 거주권은 커녕 밖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돔의 연구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탈출한다. 돔의 호버카를 훔쳐타고 유랑하던 두 사람은 이상한 숲을 발견한다. 더스트로 덮인 세상 속에서 그 숲은 살아있는 것 처럼 보였다. 숲을 탐색하기 시작한 자매는 얼마 못가 낯선 이들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 알고 보니 그 숲 깊숙한 곳에 '프림빌리지'라는 공동체가 있었는데 커다란 온실을 중심으로 생활상이 돌아가는 특이한 곳이었다. 마을의 리더이자 로못 전문가인 이지수의 심문 끝에 나오미 아마라 자매는 프림빌리지에서 살게 된다. 

 프림빌리지의 온실은 관리자인 레이첼에 의해 통제되고 마을 주민 중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이지수가 유일하다. 레이첼은 온실에서 키운 식물로 만든 더스트 분해제를 프림빌리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프림빌리지 사람들은 더스트 속에서도 보호막 없이 숨을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자급자족의 형태로 운영되는 프림빌리지에서 생활은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프림빌리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돔 사람들이 호버카를 타고 숲으로 찾아오기 시작한다. 외부의 위협과 사람들의 불안이 계속되던 어느 날, 프림빌리지 사람 중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밝혀진다. 돔 거주권을 얻기 위해 레이첼과 온실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긴 것이다. 마침내 프림빌리지는 돔 사람들의 공격으로 불에 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각자 레이첼의 식물을 들고 전세계로 도망쳐 떠난다. 


3부. 지구 끝의 온실

 아영은 나오미의 이야기를 듣고 더스트 시대 이후 사회가 재건되기까지 프림 빌리지 사람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영은 발품을 팔아 모스바나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이지수와 레이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도 얻는다. 바로 아영이 어린 시절 이희수의 정원에서 보았던 푸른빛이 바로 레이첼이 만든 더스트 저항 식물 '모스바나'였던 것이다. 아영은 즉시 나오미와 했던 인터뷰를 전세계로 공개하고, 인터뷰 기록은 논란을 만들며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이후, 아영은 레이첼을 만나 이지수에 대한 그의 감정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아영은 자신이 조사했던 식물 '모스바나'가 만들어진 프림빌리지의 온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끝>



<감상평>


- 김초엽 작가의 일정한 인물 코드 


 김초엽 소설을 읽다보면 참 마음이 훈훈해진다. '지구 끝의 온실'을 다 읽고 나니 우빛속 때부터 작가가 중심으로 잡은 주인공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들었다. 우빛속은 사회에서 약자로 보여지는 사람들, 가령 노인이라던지, 중년의 여성,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람들, 비혼모 등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였다. 김초엽이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의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에서도 어김없이 비슷한 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2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선천적으로 더스트에 내성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희귀한 생체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돔 연구소는 자매를 생체 실험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감금한다. 가까스로 돔에서 탈출해 나온 뒤에도 자매는 타인들과 최대한 접촉하기를 꺼린다.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어리고, 여성이고, 힘도 약하고 수도 적다. 누가 이들을 착취하고 이용할지 모른다. 더스트가 퍼져 숨도 쉬기 힘든 세상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들이 도착한 프림빌리지라는 공간 역시 이들 자매와 닮아있다.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강자들이 모인 돔과 비교해보면 프림빌리지는 완전 정반대의 특징을 가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숲 속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 역시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처럼 사회에서는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마을을 이끄는 리더이자 중재자인 이지수, 더스트 분해제를 만들어내는 온실의 레이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구성된 자발적 탐색꾼들(대니, 하루 등등)과 마을 사람들 전부 돔에서 거주할 수 없는 이유를 제각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이방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이 모여 있는 프림빌리지는 약육강식의 원리로만 돌아가는 돔의 대척점에 서서 공존과 화합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외부의 공격으로 프림빌리지는 불에 타고 공동체가 와해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놓지 않는다. 프림빌리지를 떠나면서 사람들은 레이첼의 식물을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전세계에 흩어진다.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 언급된 바에 의하면 자신의 고향에 도착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레이첼의 식물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고 사회 재건의 흔적을 남긴다. 나오미와 아마라 역시 에티오피아에 정착해 더스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한다.


- 이지수와 레이첼


 '지구 끝의 온실'에서 또 이야기를 해봐야할 부분은 이지수와 레이첼의 감정선이다. 읽으면서 내내 이 둘은 도대체 무슨 관계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된 우연으로 시작되었다. 더스트 시대가 도래하기 전, 연구소에서 식물을 다루는 일을 맡은 레이첼의 기계팔이 식물 덩쿨에 엉켜 고장나자 이를 고쳐주기 위해 이지수가 연구소를 방문한다.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더스트가 퍼지기 시작하고 이지수가 로봇을 고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버려진 숲의 온실에서 의식을 잃은 레이첼을 발견한다. 이것이 두번째 우연한 만남이었다. 


 두번째 만남 이후, 기계와 결합되어 인간보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지는 레이첼은 자신의 기계 팔을 고쳐주는 이지수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프림빌리지의 온실에서 식물 연구를 계속한다. 레이첼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지수는 점점 더 호기심이 생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등등 레이첼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 무렵, 어느 날 이지수는 레이첼의 뇌 부분을 의도적으로 건들이게 된다. 감정과 연관된 부분이었는데 자신에 대해 레이첼이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후, 레이첼은 이지수가 의도적으로 뇌를 건들였다는 사실을 모른채 이지수를 향한 미세한 (호감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프림빌리지를 운영하면서 이지수는 점차 다시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꿈꾸게 된다. 레이첼이 더스트 분해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그 희망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레이첼은 자신의 식물을 세상에 공개하기를 꺼린다. 만약 모스바나를 퍼뜨려서 더스트 시대가 끝나면 이지수와 인연도 끝날 것이라는 불안때문이었다. 이지수가 의도적으로 레이첼의 뇌를 건들였기 때문에 레이첼은 이지수를 향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프림빌리지가 무너지면서 극대화된다. 마침내 레이첼은 이지수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뇌를 건들였기 때문에 자신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다. 마을이 불에 타는 와중 두 사람은 갈등을 끝으로 화해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이별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으로 가면 레이첼이 이지수를 찾으러 한국의 해월 시로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지수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본 레이첼이 마침내 조작됐든 아니든 자신의 감정이 진짜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지수와 레이첼이 진짜로 다시 만나는지는 미지수로 밝혀둔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 이야기의 구성에서 아쉬운 점


 보통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여러가지 갈등과 고민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게 중에는 시대나 주어진 환경 자체에 대항해서 맞서 싸우는 경우도 있고, 내면에 굳혀진 고뇌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도 있다. 즉, 외부와 싸우거나 내부와 싸우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러나 '지구 끝의 온실'은 더스트 시대라는 디스토피아를 설정해놓은 것 치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뇌나 갈등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졌다. 더스트가 퍼져서 숨도 제대로 잘 못쉬는 시대에 약자들은 돔 밖으로 쫓겨나 생존에 위협을 받는데 이 소설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 감정 서사는 그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존재한다. 즉, 이 소설의 큰 주축으로 역할하는 이지수와 레이첼이라는 인물의 갈등과 감정선이 더스트 시대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우연히 만난 레이첼과 공생관계를 맺은 이지수는 레이첼의 뇌를 의도적으로 건드리고, 그로 인해 갈등이 폭발한다. 하지만 이는 더스트 시대든 아니든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다. 또, 이지수가 왜 레이첼을 향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뇌를 조작한 행동의 당위성도 의문이다. '왜 굳이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가?'가 빠져있다보니 다소 이야기가 밍숭맹숭하고 결점이 잇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레이첼-이지수 뿐만 아니라 나오미와 아영이라는 캐릭터의 쓰임새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는 나오미는 더스트 시대를 살아온 인물로서 더스트 시대의 참상과 디스토피아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창구로 기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나오미가 이 소설 속에서 해야하는 역할 (온실과 모스바나의 출처를 아영에게 전달하기)을 수행하기 위해 프림빌리지에 도착하는 과정은 일종의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당위성은 없다. 또한, 나오미가 프림빌리지에서 살면서 레이첼의 비밀에 대해 알아내지도 않았다. 이지수-레이첼의 서사와 나오미의 서사가 독립적이기 때문에 장과 장 사이,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이야기의 구조 등등이 긴밀하고 쫀쫀하게 연결이 되어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영 역시 과거에 우연한 계기로 옆집에 사는 이지수 노인의 정원에서 모스바나를 보았지만 그게 아영을 더스트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로 만들어주진 못한다. 아영은 이 이야기에서 철저한 외부인으로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합쳐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게 왜 하필 아영이어야 하는지, 아영이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중대한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말은 아영이라는 캐릭터가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 장의 주요 화자들을 이어주는 결집성과 당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구조가 탄탄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결말 역시 김이 샌다. 3부에 들어서야 프림빌리지의 이지수와 레이첼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이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이지수와 레이첼은 프림빌리지가 무너질 때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는데 그건 소설이 끝나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이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독자가 추측하도록 남겨둔다. 일종의 열린 결말인데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이라기 보다 모호하고 애매한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선명하게 잘 그려진 그림 위에 일부러 물을 뿌려 흐릿하게 만든 느낌이 든다. 


 이렇다보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레이첼-이지수의 관계 속에 있는지, 아니면 더스트 시대의 약육강식 세계에 있는지, 아니면 사회 재건과 관련된 것인지 전혀 종잡을 수 없다. 한마디로 무슨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서도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정리하자면 더스트 시대라는 설정이 필수적이지 않고, 설정된 디스토피아에 비해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개인과 개인의 갈등에 국한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인물 간 만남이나 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 휴머니즘을 강조한 SF 소설


 천선란의 '천개의 파랑'이나 김초엽의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이 SF 소설이지만 호평을 얻고 있는 작품들이 두루 있다. 이런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의 감정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간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갈등은 흔한 주제다.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는 보통 SF 소설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SF 소설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대부분 인간의 탐욕이나 기술만능주의로 빚어낸 디스토피아 세상 혹은 그런 미래 세상을 그려내는 난해한 설정으로 인한 거부감과 진입장벽이다. 


 하지만 '지구 끝의 온실'이나 앞서 언급했던 두 작품은 조금 더 대중적이고 이해가 쉽다. 작가가 SF라는 주제에 맞게 미래 세상을 상상으로 새로 창조해내고 있지만 이야기 속에 깔린 서사는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감정선과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어쩐지 SF장르가 메인이 아니라 곁다리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SF의 대중화를 매우 환영하기 때문에 이런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SF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럭저럭 시간 때우며 읽기 좋았던 소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피닉스(Phoeni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