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메들리

by 배니할

나는 연신 변하는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보리잎이 햇빛에 반짝이면 종달새는 노래하네. 푸른 물결 스치며 날아올라 창공에 솟구치네
하늘 끝까지 다다랐느냐…….’

노래 부른 지가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연둣빛 신록, 분홍빛 산벚꽃이 나의 뇌에 자극을 주어 입을 열게 했다. 조수석에 앉아있으면 차창을 열고 계속 사진을 찍었을 테지만 운전하니 노래라도 부르라고 지시하는 듯하다. 한번 터진 목청은 신이 났다. 약간 녹은 슬었지만 그래도 잊고 지냈던 노래가 술술 나온다.

진분홍 꽃이 무리 진 곳을 지난다. 고속도로가 아니라면 차를 멈추고 싶다. 복숭아밭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도화꽃이다. 곱고 아름다운 저 빛깔, 요염한 자태라니 사람을 홀릴만하다. 당명황의 혼을 쏙 빼놓은 양귀비가 저랬을까? 노래가 바뀌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 나는 일흔이 넘은 이 나이 가 되도록 멋들어진 가요를 모른다. 실은 가사를 끝까지 외우지 못해서다. 어려서 부르던 동요나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는 분위기만 띄워주면 술술 나온다.

노래는 영어로 바뀌었다. ‘오 대니 보이’ ‘스와니강’ 학창 때 멋으로 외웠던 가사가 가끔 끊기기도 했지만, 적당히 땜질해 가며 ‘앤니로리’까지 부르고나니 남밀양IC에 도달했다. 남편이 옆에서 운전하는 내 손에 자기 왼손을 덮어 쓰다듬으며 말한다.

“참 오랜만에 듣는 봄 노래네. 아직도 당신은 소녀 같아. 참 고맙지. 이제부터는 국도로 내려왔으니 정신 차려 운전해야 해요.”

오늘 나의 임무는 대구에서 마산역까지 남편의 기사로 따라가는 것이다. 오랜만에 남편 출장 가는 길은 경산, 청도, 밀양, 창원을 거쳐 마산까지 가는 코스이다. 꽃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기분이 좋다. 어젯밤에 인터넷에서 가는 길을 자세히 메모해 놓았다. 이제 봄 메들리는 잠시 멈추고 오로지 시선을 차창 앞으로 고정하고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남편은 메모와 내비게이터를 보며 일일이 도로안내를 했다. 마산역에 무사히 도착해 남편은 서울서 내려오는 회사 분을 만나러 나갔다.

마산역 앞의 튤립정원의 꽃들이 조화처럼 크고 화려하다. 그것을 차 안에서 바라보니 다시 노래가 입안에서 뱅뱅 맴돈다. 아직 봄 메들리의 레퍼토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 기분이라면 마산에서 서울까지 장거리도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겠다.

봄이면 꽃구경하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 그때도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불암산 밑의 수도원 배꽃을 보러 갔다. 검고 튼튼한 나뭇가지에 하얀 배꽃이 과수원에 가득한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곳의 배나무는 특별히 잘 생겼다. 수도사님들이 손수 정성스레 가꾸어서 그런지 배나무가 그렇게 남성스럽고 멋스럽다는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가을이면 배를 사러 수도원을 다시 방문했다. 그 시원하고 맛있었던 기억을 웬 노란 튤립을 보며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차에 초대된 친구들은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하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합창했다. 한 곡이 끝나기 전 곡명을 불러주면, 실타래 풀리듯 노래는 이어졌다. 풍경을 즐기라고 일부러 한적한 길을 택해 서울 부근 꽃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녔다. 차창을 열어놓고 따라오는 뒤차는 모두 보내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산수유는 이천으로, 영산홍은 진접면으로, 남한강으로, 배꽃은 퇴계원으로 밤꽃이 피는 초여름까지 봄 메들리는 계속되었다.

법정 스님이 암자에서 수행하다가 창을 열고 보니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때 깨달았다. 조물주가 이렇게 열심히 창조 작업을 하시는데 앉아만 있으면 그것은 자연에 대한 결례라고….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된 우리는 열심히 즐기고 찬미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권리이며 의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 후부터는 열심히 자연으로 나간다.

수년 전 봄,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다. 살살 부는 바람에도 기침을 해서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보름이나 병원에 누워있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는 이미 벚꽃은 피었다 지고 가로수에는 연두색의 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결국, 그 해는 벚꽃을 못보았다.

내가 쉰 살이었을 때다. 회사 일에 바쁜 남편에게 너무 꽃구경만 다니는 것이 미안하고 고마워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환갑까지 꽃구경한다 해도 열 번밖에 안 되겠지?” 하니 “참 그렇네. 젊었을 때 많이 다녀요. 나중 후회하지 말고.” 나는 남편 허락도 받았겠다. 봄은 한 번이지만 꽃구경은 한 해에 열 번은 다닌 것 같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봄이 되면 꽃을 찾아다니는 나는 참 염치도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껄껄껄’ 하는 후회는 없다.

나이 들고 보니 인생이 짧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다리 성할 때 많이 구경하고 즐기고 돌아다니면 후회는 없으리라는 것을 내 경험으로 말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봄 메들리와 함께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