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품은 추억
이 장롱을 열어본 지가 얼마 만인가. 안에서는 여전히 어머니의 체취가 묻어 나는 듯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닦아내니 눅눅한 나무 냄새가 나긴 했어도, 여전히 튼튼하고 쓸 만했다. 양복장 안의 옷걸이 봉도 굵고 단단하여 요즘 것보다 더 견고하다. 밑에는 서랍이 두 개 달려있었고, 바닥의 신문지는 누렇게 바랜 채 1998년 2월 15일 자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머니에 이어 큰올케가 별장에 두고 쓰던 것을 이제는 내가 물려받았다. 육 남매 중 내가 쓰게 된 것이 새삼스럽다. 아마 언덕 위에서 영면하신 어머니께서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큰오빠와 작은 오빠가 노환으로 이곳에 오지 못하게 되고, 셋째 오빠마저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신 뒤로 집이 비어있었다. 자칫 폐가가 될 뻔한 이 집에 우리 부부가 내려와 살펴달라는 오빠들의 권유가 이어졌다.
몇 차례 주말마다 묵은 살림을 정리하는 가운데,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이 장롱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나이보다 훨씬 많으니 8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큰오빠가 여든일곱이니 계산이 맞다.
어머니가 생전에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큰오빠와 작은 오빠가 두 살 터울의 장난꾸러기였는데, 하루는 안방에서 쿵 소리가 크게 나서 달려가 보니 장롱이 넘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 놀랐는데, 장롱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와 사람을 불러 세우자 형제가 멀쩡히 나왔다. 어머니는 그 순간 신앙이 없으셨는데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외치셨다 한다. 아이들이 장롱문에 매달려 흔들다 함께 쓰러졌는데, 기적처럼 장롱 속을 쏙 들어가 살아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짝에 붙은 거울조차 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보니 장롱에 맞추어 짜 넣은 두꺼운 거울이 가장자리에는 요목으로 견고히 둘려 있어 견고함이 느껴진다.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져 어머니의 신혼 시절부터 해방과 6·25전쟁을 거쳐 수많은 이사를 함께 했으니, 이 장롱은 시대의 풍파를 고스란히 견뎌낸 산 증인이다.
그런 사연이 많은 장롱이 이제 내 곁에 있다. 경첩도 헐거워지지 않고 손잡이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단단할까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장롱을 향해 중얼거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목욕 좀 하자. 얼마나 기다렸니?” 정성껏 먼지를 닦고 왁스 칠을 하니 은은한 향기까지 배어 나왔다. “이제 사람 냄새 나서 좋지? 외로웠을 텐데, 새 옷들이 들어가니 덜 심심할 거야” 그러자 장롱이 반짝이며 미소짓는 듯 보였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큰올케가 이 장롱을 이곳으로 옮겨 두었고, 아버지의 궤짝과 어머니의 살림살이 몇 점도 함께 남아있다. 칠십이 넘어 돌아온 나에게 이곳은 어린 시절을 되살려 주는 추억의 공간이다. 선유정이란 돌에 내이름을 새겨 넣어주신 오빠들 마음과, 몸이 약하다고 평생 어머님의 모정을 자극했던 딸이라서 인가. 이곳 부모님이 계신 산 아래 집에 내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어머니의 장롱과 책, 앨범이 곁에 있는 지금, 나는 다시 아이가 되어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