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점

by 배니할


27년여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50년을 함께 살아왔다. 우리 부부의 경험과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부부란 계속 변화하는 하나의 공동 생물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은 전혀 다른 각각의 인격체이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부는 ‘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중국 북경 서태후의 후원에서 ‘연리지’라는 신기한 나무를 본 적이 있다. 뿌리가 다른 나무가 자라다 어느 순간 줄기가 맞닿아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며. 부부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중국인들은 상상력을 더해, 연리지에 ‘비익조’라는 상상의 새를 덧붙여 궁합이 좋은 부부를 비유했다. 비익조는 암수 한 쌍이 눈과 날개를 각각 하나씩만 가지고 있어, 늘 깃을 맞추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다.
처녀, 총각 시절에는 각기 다른 나무였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한 나무가 되어 살아간다.
비익조처럼 날개를 맞추지 않으면 가정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주장과 성격을, ‘부부’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모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이지만, 가정이라는 틀 속에서는 서로 양보하며 살아야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갈릴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다.
“부부란 성전의 두 기둥이다. 가정은 이 기둥 위에 얹힌 지붕과 같다. 한 기둥이 기울면 성전은 무너진다.”


둘이 하나를 이루어 성전을 세워가듯, 남편과 아내가 각자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해낼 때 비로소 가정은 든든해진다. 이런 부부야말로 가장 민주적이고 평안한 관계일 것이다.


부부는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각자의 독립성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 경기에 비유하면 부부는 한 팀이다. 서로 다른 점이 오히려 팀을 튼튼하게 한다. 다른 성격이 상대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격 급한 남편과 유순한 아내가 있다면, 불같이 부닥친 남편 뒤에서 아내는 소방관처럼 수습할 수 있다. 큰 틀에서의 조화와 개성의 존중이 있다면, 다름은 결코, 장애가 되지 않는다.


부부가 만날 때는 성향이 비슷하더라도, 세월 속에서 성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항해할 때 키는 한 사람이 잡아야 한다. 둘이 동시에 키를 잡으려 하면 배는 앞으로 나아 갈 수 없다. 물론 키를 잡지 않은 쪽도 의견을 낼 수 있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꿀 수도 있지만, 조타수는 하나여야 한다.


나와 남편도 비슷한 성격과 가정환경을 지녔다고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달랐다. 취미도 관심사, 생활패턴도 달랐다. 예를 들어 외출 준비를 할 때, 나는 살림을 챙기고 화장을 하고 아이들 옷을 입히느라 분주하지만, 남편은 모든 준비가 끝난 뒤에야 느긋하게 나오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에는 변화시키려 노력했으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살려면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그 과정에서 내 성격과 행동이 바뀌었다. 남편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와 살기 위해 변했다. 그는 바깥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에는 신경을 안 쓰게 했다. 직장생활로 가족을 부양하는 일에는 ‘98점’을 주었다. 그래서 집안일을 부탁하지 않았고, 집에서는 편히 쉬게 했다. 마치 축구선수의 매니저처럼, 다음 경기를 위해 충전하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우리의 항해는 지금까지 순항할 수 있었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쌍둥이도 다르다. 하물며 다른 환경과 DNA를 지닌 남녀가 같을 리 없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 제목처럼,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제방의 축대도 큰 돌, 작은 돌, 모난 돌, 둥근 돌이 어우러져야 튼튼하다. 이치가 그러하니, 부부도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상대방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없는 장점으로 여긴다면, 부부가 이루는 가정은 든든한 성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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