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추석풍경

by 배니할

시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덧 두 해가 지났다. 1주기조차 지내지 않고, 1년에 한 번 추모예배로 그 자리를 대신했다. 차례 대신 드리는 예배는 굳이 집에서 하지 않아도 되기에, 올해 추석도 콘도에서 지내기로 했다. 젊은 아이들 가을 소풍도 겸해서 말이다. 설날에는 스키장이 있는 콘도에서 아이들이 스키도 타고, 마치 휴가처럼 보내기도 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우리 집안이 이렇게 앞서가게 된 데에는 아버님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큰아들 내외와 손자가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언젠가는 제사가 사라질 것을 아버님은 미리 내다보셨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아들 며느리를 편하게 해주자며 친척들에게 선언하셨다. 우리 집안은 공휴일 중 하루를 정해 추도예배를 드리고, 음식은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무렵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조심스레 우리의 방식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큰댁, 작은댁도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교회에 다니는 다른 집들도 제사 대신 예배로 전환했다. 그렇게 우리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송편은 맛보기로 조금 사 오고, 전날에는 손자며느리 세 쌍이 막국수를 먹으러 나가거나 극장 나들이를 한다. 명절 당일 식사를 마치면 아들들이 설거지하고, 며느리들은 커피를 마시며 고부간, 동서 간 정담을 나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예전에는 흉을 보던 이들도 이제는 변화해 가는 추세다. 콘도에 가면 우리처럼 가족끼리 온 집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화장(火葬)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제사 문화도 함께 바뀌고 있다. 제사의 본래 의미는 살리되, 바쁜 현대인의 삶에 맞게 형식을 조율하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제례 문화가 산업사회, 정보화사회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시골에서 자식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부모가 도시로 찾아가는 명절 풍경도 흔하다. 명절이 긴 연휴로 주어질 때는, 어떤 가족은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시간 활용 측면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된다. 결국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이 본질은 아닐 테니까.


이번 추석도 아버님의 선견지명 덕에 마음 편히 콘도로 왔다. 큰댁은 하루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는 큰조카 회사에서 사용하는 콘도라는데, 대형 두 동을 빌려 불편함 없이 지낸다. 가평 현리 길목에 있는 풍림은 이랜드로 주인이 바뀌며 ‘켄싱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잣나무 숲에 둘러싸여 공기가 맑고 청량하다. 저녁엔 바비큐장에서 아들들이 고기를 구우며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숲 너머로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속으로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내일 아침 일찍 서둘러 오세요. 아버님 따라오시면 되어요. 예배 마치고 산소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자손 15명이 모시고 가니 기쁘시겠어요. 보름 전엔 유택 벌초도 해두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들국화가 산소 가는 길가에 무리 지어 피었어요. 설날엔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손자들이 가자는 대로 따라오세요. 증손주들이 그렇게 좋아하거든요. 어머니도 흐뭇해하실 거라 믿어요. 우리 자손들 화목하고 잘 지내는 것, 다 어머님 아버님 덕분인 줄 알아요. 두 분 영혼이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 누리세요. 어머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던 때가 그립네요.”


바비큐장에서 피어오르는 고기 냄새와 연기가 숲속을 감쌌다. 문득 이것이 이 시대의 ‘향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짜기마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제사의 축문처럼 느껴지고, 우리 가족의 기도 소리처럼 다가왔다. 어제까지 오던 비는 그치고, 중천의 달이 온 세상의 소원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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