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 온 나무들

by 배니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나무들이 미장원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오늘은 모두 염색을 하러 온 손님들이다.


은행나무는 노랑 물을 들여달라고 주문했고,
단풍나무는 빨강색을 부탁했다.
함께 온 친구는 “저는 브릿지로 멋 좀 내주세요.” 하며 덧붙였다.


그 뒤에 서 있던 가문비나무는 주황색을 선택하고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조수는 메모지를 들고 줄에 서 있는 나무들에게 차례로 다가가 주문을 받았다.
벚나무는 잎사귀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요.” 조수가 걱정스레 말하자, 벚나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난 이번 가을 축제의 여왕이 될 거에요.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와 잎사귀를 하나씩 주워가며 감탄하죠.
그만큼 광고 수입도 있다니까요.”


느티나무는 차분히 말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갈색이 좋아요. 고상하고 튀지 않아서 내 취향에 딱이에요.”


이때 잣나무와 소나무가 조심스레 미장원 안을 기웃거렸다.
조수가 물었다.


“손님들은 어떤 색을 원하시나요?”


둘은 되물었다.
“염색하면 몇 달이나 가나요?


”한 달 정도요. 가을 축제가 끝나면 색은 모두 털어버리고 겨울잠 들어요.
봄에 새잎이 나올 때까지 푹 잘 거래요.“


“그래요?”
잣나무와 소나무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안 할래요. 우리는 떠난 산을 지켜야 하거든요.
우리 잎은 바늘처럼 뾰족해서 설화도 잘 안 입고, 북풍에도 끄떡없어요.
겨울 산의 호젓함을 즐기며 지낼 거예요. 가끔 다람쥐가 와서 놀러 오고 멧돼지가 다녀가면 심심하진 않거든요.”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미장원을 뒤로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이전글급할수록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