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기다려라

by 배니할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그릇에 물을 받으려 하면, 물이 사방으로 튀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그럴 땐 그릇 크기에 맞춰 물살을 약하게 줄여야 조용히, 고요하게 물이 받아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급할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일지 모른다.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기다릴 땐 기다리고, 참아야 할 땐 참는 것. 그 과정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결말은 다가오게 마련이다.

며칠 전 폭우가 쏟아진 뒤, 나는 강변을 찾았다. 흙탕물이 사납게 넘실거리며 다리 가장자리에 걸린 온갖 쓰레기를 휘감아 떠내려 보내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 쓰레기들은 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다리 8부쯤에 흉하게 걸려 보기에도 불편했지만, 지금은 맹렬한 물살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시원했다. 태풍이나 폭우는 수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강바닥까지 뒤집어 놓으며 자연스럽게 청소를 해주는 면도 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자연에는 있구나, 싶었다.

물살이 너무 세면 강 가장자리에 있는 물은 중심 흐름에 쉽게 합류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 그러나 본류가 약해질 즈음, 가장자리에 머무르던 물과 나뭇가지들이 서서히 중심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제야 비로소 함께 흘러간다.

이 모습을 보며, 사람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우리는 큰 물살처럼 예기치 못한 일들에 휘말리게 된다. 그 속에 무작정 뛰어들면 소용돌이에 휩쓸려 헤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강 가장자리에 머물던 나뭇가지처럼, 중심 흐름이 약해지고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 덕분에 번성했다. 범람은 고통이자 축복이었다. 토양은 비옥해졌고, 그 위에서 문명이 꽃피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아무리 내가 급하게 서둘러도, 그 시간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그래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은 하늘에 맡기라는 뜻.

급하다고 물을 넘치게 틀어봤자, 그릇은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릇이 흔들리고, 물은 엉뚱한 곳으로 튀어버릴 뿐이다. 기다림은 무기력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삶이 흐를 길을 찾을 때까지, 조용히 그 곁에서 기다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순리(順理)를 따르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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