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사슴코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구절이다.
어제 퇴근해서 들어온 남편의 코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다, 보통사람들 코보다 큰 코가 검붉은 색깔이 되어서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무실 근무를 하다가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장으로 출근한 지 일주일째였다.
삼척에서 이년 반이 넘어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제천에서 일이 시작된다기에 나는 철없는 새댁처럼 기대에 부풀었다. 새로운 고장에서 살아본다는 것이 나는 그렇게 좋았다.
그러나 남편은 두 달 동안 지금까지 해온 어떤 일보다 더 큰 고생을 했다. 남편이 팀보다 먼저 와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여직원까지 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러한 남편을 보면서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큰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뿐만 아니라 이 땅의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해왔는지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은 제천으로 온 지 한 달 만에 현장에 투입되어 본격적인 공사감리를 시작했다.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서 사무실 회의를 마치고, 젊은 감리들과 함께 공사 현장으로 간다. 온종일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오후 4시경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남은 일을 처리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녁 7시경이다. 그렇게 수일을 보내더니 코가 검붉게 변해서 돌아온 것이다. 루돌프 사슴코라 했지만, 서커스 어릿광대가 붉은 코를 매달고 온 것 같아 놀랐다.
내가 선크림을 바르고 나가라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검게 탄 것이 아니라 화상을 입은 것 같다. ‘더군다나 당신의 코는 크고 높아서 에베레스트산 같다. 살결이 흰데다가 태양과 가까워 더 붉게 탄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오후에 시장에 가서 선크림을 새로 사 왔다. 아침 출근 전에 코와 뺨에 골고루 바르고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첫날은 가만있었지만, 그다음 날부터 선크림 발라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안경을 쓰고 식사를 하는 중에 발라주는 게 쉬운가. 선크림이 하얗게 뜨지 않도록 두드려줘야 하는데, 자꾸만 “됐다, 됐어!” 하며 짜증을 낸다. 식사하고 양치질하고 출근하기 바빠서 그러는지 알겠지만, 그럴 땐 꼭 아이들 같다.
자신이 바르면 될 것을 내가 발라주어야 하나 싶지만, 시꺼멓게 한번 타면 회복되기 어려운 나이다. 남편도 이렇게 말한다. “직장생활의 마지막을 아주 강렬하게 마무리하나 봐.” 조금만 지나면 사무실 근무로 돌아간다 하니, “아, 빨강 코의 할아버지, 그때는 검게 그을은 얼굴이 좀 나아질까요?”
우리 집의 루돌프. 크리스마스는 멀었지만, 당신의 불타는 코는 벌써 시즌을 시작한 듯 하다. 그래도 그 코 하나에 당신의 삶의 무게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 더욱 고맙고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