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숨에 깃든 사람들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by 배니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묻는다면
나는
임신과 출산의 날들을 떠올린다


병원에서도 손쓸 수 없던 유산을
한약으로 건너게 해
아이의 숨을 이어 주신
한의사 선생님


후산을 못해
죽음이 문 앞까지 왔을 때
태를 분리해
나를 다시 살리신
산부인과 선생님


출혈이 멈추지 않아
다섯 병의 피를 빌려야 했던 날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자기 피를 나누어 준
다섯 분의 은인들


열 달을
유산이 두려워
집에 누워만 있어야 했을 때
묵묵히 살림을 맡아 준
처녀 재순이


딸과 며느리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신
두 분의 어머님


나는 아기 낳다
생을 마칠 뻔했지만
그분들 덕분에
서른 살에
다시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작고하신 분도
아직 살아 계신 분도 있지만


이제 나는
만날 수 없어도
기도로 안부를 묻는다


좋은 기운으로
그분들의 행복을 빌며
오늘도
내 숨을
조심히 살아낸다


작가의 이전글이어짐의 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