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지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자기 할머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어찌 그리 소극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나 하겠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지혜가 보인다.
옛사람들의 명언을 읽다 보니 할머니가 로마의 세네카를 알지 못하셨을 텐데 그 말과 참 비슷하다.
‘모멸에 대해 복수하기보다는 그것을 무시하는 편이 대개는 낫다’
‘한때의 모욕은 한때로 씻어버리는 것이 그 값에 알맞은 것이다’ -카네기_
‘적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대항책은 이쪽의 진실에 있다. 진실하다면 적도 드디어 굴복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용서는 승리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이다’
*할머니 말씀
1. ‘지는 것(용서)이 이기는 것(승리)이다.’
다툼이란 결코 큰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자기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해 기어이 인정받겠다는 강압적인 태도가 숨어 있다. 대개 그런 것은 진실이 아니기에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 정도는 져주는 것이다. 가만두면 태풍이 스러지듯이 스스로 사라지고 만다. 결국, 진실은 이기게 되어 있다.
2. '새겨들어라.'
무슨 말을 들을 때 그 속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헤아려 들으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설령 기분 좋게 들리지 않더라도 오해하지 말고 좋게 들으라는 말씀 같기도 하다. 할머니의 이 두 말씀은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삶에서 몸소 터득한 지혜라 생각된다.
*젊은 시절의 생각
나도 젊었을 때는 그 말을 듣고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때 나는 동서양의 명언을 자주 보면서 진리란 인간에게 느껴지는 공통의 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동양의 사상은 정적인 데 비해 서양의 사상은 현실적이면서 진취적이라는 점이 대조되었다. 동서양의 문화가 다르듯이 사람들이 남겨 놓은 명언도 조금은 달랐다. 그런 동적이고 진취적인 점이 젊은 나에게 힘을 주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게 했다.
가령 동양사상에서는 '참을 인' 자를 많이 강조하고 참고 기다리면 좋은 끝이 온다는 그런 식의 가르침이 많았다. 명심보감의 첫 구절이 ‘적선지가에 필유여경(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이라 시작되지 않던가. 어찌 보면 장기전이다. 그것이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평생을 양보하고 베풀고 사는 삶이라 볼 수 있다. 당대에 한정하지 않고 후대에라도 복을 받으리라는 믿음으로 잘도 인내하였다.
그때 나는 롱펠로의 ‘생의 찬가’를 그렇게 좋아하였다. ‘인생의 들판에서 쫓기 우는 들소와 같이 되지 말고 투쟁하는 영웅이 되라.’ 닥친 위기에 용감히 대처해 나가는 단기전이라 볼 수 있겠다.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을 나중을 위해 참는다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지혜
할머니는 무학이신데 며느리에게 글을 배워 소설을 읽으셨단다. 소설이라야 장화홍련전이나 숙영낭자전 등을 읽고 베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분들은 지식은 많지 않아도 지혜는 요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났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가 남겨주신 지혜로운 말씀이 다가온다. 할머니는 지금은 비록 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것이라는 말씀임을 깨닫게 된다. 어떤 말이라도 새겨듣는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어서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부드러운 태도는 능히 꿋꿋한 태도를 억제한다.’ ‘물은 바위를 뚫는다’라는 노자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만큼 세월이 가서 인생의 지나온 과정을 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중상은 괴상한 성질을 가진 악덕이다. 그것을 깨뜨려 버리려 하면 되살아온다. 그리고 그대로 버려두면 그것은 자연히 죽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