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사랑의 추억

by 배니할

할머니 사랑의 추억


할머니는 봄이면 병아리 열두 마리를 사서 키우셨다. 그러나 초복 무렵이면 쥐가 물어가고, 족제비가 물어가고, 살아남는 건 서너 마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은 닭으로 할머니는 손주들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손수 잡고, 직접 삶아서, 일곱 손주에게 골고루 퍼주셨다.
생일이 돌아오면 꼭 수수 팥떡을 해 주셨다. 커다란 가마솥에 엿기름을 고아 한과, 조청, 갱엿을 만들어내셨고, 꿀도 여러 병씩 사서 벽장 위에 넣어두셨다. 학교 다녀오면 꿀물 한 잔 타 주시던 그 손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집 벽장에는 늘 먹을 게 넘쳤다. 나는 그저 우리가 부자인 줄 알고 살았다. 나중에 알게 됐다. 부자라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부지런하셔서였다는 걸.
소작으로 준 논에서 나오는 벼 수확만으로도 식구들 식량은 넉넉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쌀밥을 먹을 수 있었고, 먹는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일곱 살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외아들로 자라셨다. 할머니는 약한 몸의 아들을 보며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며 키우셨다. 아버지 나이 열여덟에 동갑내기 며느리를 들이셨고, 곧 손주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일곱 명이나 되는 손주들을 할머니는 정성과 사랑으로 하나하나 품에 안아 키우셨다.

할머니는 체격이 건장하시고 손도 크셨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시며 집안을 돌보셨다. 심부름조차 우리에게 시키지 않으셨다. 힘든 일은 할머니가 모두 하셨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고운 몸매에 작고 가느다란 체구로, 아버지와 자식들 의복 수발과 음식만 하셨지 농촌에 사셨어도 밭일도 하지 않으셨다.

일가친척이나 온 동리에서도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지극하셨기에 남들도 우리 칠 남매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랑 안에서도 교육만큼은 엄격하셨다. 할머니 말씀이면 누구도 거역하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은 동네 어른들로부터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라는 칭찬을 늘 들었다. 열 번을 만나도 인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부모님이 할머니께 대하는 것이 저절로 예절교육이 된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은, 중풍으로 누워 계신 10년의 세월 동안 더 빛났다. 부모님이나 손주들은 할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님은 작은 체구에도 큰 체구의 할머니 병시중을 혼자 다 하신 효부셨다. 우리는 어머니가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다. 출장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는 늘 하루쯤 늦게 돌아올 것처럼 말해놓고는 하루 먼저 돌아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지만, 지금도 우리 칠 남매는 모이면 똑같은 말을 한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마치 햇살처럼, 포근하고 눈부시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무결점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먹고 컸고, 이제는 우리 자녀들에게, 늘 함박웃음을 지으시던 증조 할머니의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무소식이 희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