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털이

by 배니할



할머니는 오늘은 작심하고 집을 나섰다. 가로수의 은행잎이 누렇게 변해가면서 할머니는 마음이 급해졌다. 오며 가며 길에 떨어진 은행을 보면서 언제 시간 내서 단양 가는 곳으로 나가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바로 오늘 은행털이에 나선 이유이다.


말이 은행털이지 털긴 어떻게 가로수를 털어? 나무 아래 떨어진 것을 줍는 것인데 은행 줍기보다는 그래도 거창하게 은행털이란 말이 그래도 재미있지 않나. 은행이란 말이 뱅크란 은행과 같으니 은행 줍기나 은행털이나 마치 할머니 자신이 은행강도가 된 기분을 함께 맛보려는 게 아닌지 싶다. 할머니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작년에 도계중학교 교정에서 은행을 주웠다. 그것을 가지고 반년 가까이 약밥도 해 먹고, 프라이팬에 열댓 개씩 구워 할아버지와 별미로 들었다. 그때 이미 은행의 구수한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 후 할머니는 어딜 가든지 어느 곳에 은행나무가 있나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제천 시내에도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있으나 그렇다고 차도에 떨어져 행인들이 밟고 지나가는 것을 주울 수는 없었다.
원래는 생각해 둔 곳이 따로 있었다. 제천에서 영월 주천 가는 길에 인도미술관이 있다. 할머니는 여름에 그곳 관람을 갔다가 분교운동장에 있는 은행나무를 점찍어 두었다. 그곳은 폐교 운동장이었는데 제법 큰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가을이 되니 은행 때문에 혼자 그곳까지 가기는 멀고 혹시 갔다가 이미 누가 주워갔을지도 모를 일이라 그곳은 포기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그곳보다는 가까운 이곳 단양 가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바쁜 약속이나 있으면 몰라도 보통은 일부러 지방도나 한적한 안 가본 길로 천천히 다닌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한 일 년쯤 지나면 그 고장 사람들보다도 주변 길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리정보가 많아 평소에도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보너스처럼 이렇듯 은행털기에 좋은 곳을 여러 곳 알게 되었다.




이번 가을에는 비가 많이 와서 은행 주으러 나서기가 마뜩잖아 오일장에서 은행을 찾았는데 대추는 있는데 은행은 안보였다. 그런 차에 오늘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할머니는 두 번째 점찍어 두었던 곳으로 이동해서 산밑에 차를 세웠다. 걸어서 1km가량 산길을 올라갔다. 예전에 누가 길가에 은행나무를 심어놓아 오늘 할머니를 기쁘게 해 주었을까, 할머니는 그저 나무에게 고맙고, 이 모든 것을 창조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곳 은행나무는 할머니 마음에 꼭 들었다. 우선 사람의 인적이 없어서 좋았다. 그 위에 인가가 있는지 절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전에 왔을 때나 오늘이나 사람이 없어 좋았다. 며칠 전 비바람이 친 후라 은행이 제법 떨어져 있다.
은행나무는 모두 열매가 열리는 게 아니다. 암은행나무에만 열매가 달리는데 가까운 곳에 수은행 나무가 있는 게다. 할머니는 은행을 모아 그것을 발로 속알맹이는 으깨지지 않게 강약을 조절해 가며 밟았다. 노랗게 익은 겉살이 벗겨지면서 하얀 속 알맹이가 드러났다. 할머니는 비닐장갑을 끼고 알맹이만 쏙 빼서 까만 비닐봉지에 담았다.


작년에는 은행을 주워서 화분에 파묻었다가 나중에 겉껍질을 벗겼는데 올해는 기술이 진일보했다. 그것도 어떤 아주머니가 길에서 바로 알맹이만 쏙 빼내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러니 두 번 할 일을 한 번에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은행 냄새가 싫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구수하게 느껴지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또 어떤 사람은 은행 알레르기가 있다 하는데 할머니는 맨손으로 해도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 은행털이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체에 걸러 씻으니 금세 하얀 은행알이 한 되는 족히 되었다. 밖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관계로 채반에 물을 빼고 방바닥에 보일러를 틀고 선풍기도 돌리고 해서 말렸다.
할머니의 은행털이가 올해에도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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