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를 보내며

by 배니할


지난 가을 태풍이 몰아친 어느 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집 뒤의 감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 정원 가득히 큰 덩치를 뉘이고 누워 있는 나무를 보자, 아찔함과 함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무가 쓰러진 방향이 반대였다면, 지붕이 무너지고 내가 깔리는 참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잠들어 있었더라면 TV에서나 보던 매몰 사고가 그대로 재현되었을지도 모른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생명이 있는 나무가 마지막 순간에라도 안간힘을 다해 몸을 틀어 우리를 피해준 것이 아닐까. 꽃도 사랑을 주면 더 예쁘게 피어나듯, 오래도록 이 집과 함께한 감나무도 무언가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골 마을 어귀에는 언제나 커다란 나무가 서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오방색 띠를 두르거나 돌무더기를 쌓으며 그 나무에게 소원을 빌곤 했다. 마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감나무도 그런 존재였다.

오래전 오빠들이 이곳에 작은 별장을 짓고 정원을 조성한 곳이다. 오빠들이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내가 자주 내려와 이곳을 살피게되었다.

집보다 높은 뒤편에 자리한 감나무 두 그루는, 이 집이 세워지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왔고, 해마다 감을 맺으며 우리 가족에게 풍성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한때는 올케언니가 곶감을 만들며 가을을 보내기도 했다.

감나무의 쓰러짐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오빠들과 이별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곳의 사진을 자주 찍어 오빠들에게 보내드리며 안부를 대신한다.

“이제는 늙어서 못 가. 사진만 봐도 목이 메는구나.”
“동생이나 많이 즐겨…….”
오빠들의 안타까운 말씀이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태풍에 쓰러진 감나무는 이미 속이 썩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상태였다. 수령 1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남은 감나무도 쓰러질 위험이 있어 안락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오빠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은 되도록 그대로 두고 싶다. 그분들이 얼마나 아끼던 나무들인지 알기에.

이곳의 나무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오빠들의 시간과 정성, 기쁨과 슬픔이 배어 있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제 그 나무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낙엽과 잔가지를 태우며, 쓰러진 감나무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집을 지켜주고 떠난 것이라 믿고 싶다.

감나무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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