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풀은 약이다

by 배니할

봄이 오는 신호는 낙엽을 뚫고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새싹에서 시작된다. 어찌 그리 절기를 잘 아는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토끼가 먹는 풀은 사람도 먹을 수 있다’는 말처럼, 아직 토끼풀도 나오기 전부터 자잘한 풀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달래, 냉이, 꽃다지 모두 캐보자”라는 노래처럼, 잘 보이지도 않는 푸른 것들이 마른 땅을 헤치고 나온다.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는 돌미나리가 가장자리에서 잎을 내민다. 겨우내 이끼 속에 숨어 있던 뿌리가 날이 풀리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즈음이면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고, 하루가 다르게 꽃을 터뜨린다.


나는 요즘 찍은 사진을 자르고, 글자를 넣고, 날짜를 표시해 친구들에게 봄소식을 전한다. 작은 수고이지만 큰 즐거움이다. 같은 종류의 꽃을 한 장에 모아 콜라주를 만들면 봄의 향연이 한눈에 펼쳐진다. 3월 초부터 홍매, 백매, 녹아매가 공원을 밝혔고, 산수유와 목련, 진달래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땅에서는 나물들이 파랗게 솟구치더니 어느새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꽃들이지만, 나는 그 작은 꽃들 앞에 걸음을 멈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냉이꽃, 샛노란 꽃다지, 그리고 이름이 영 민망한 ‘큰개불알꽃’까지. 찾아보니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별명이 따로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예쁘고 작은 파란 꽃에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다.


냉이꽃은 또 얼마나 앙증맞은가. 하얀 꽃잎 네 장 속에 연둣빛 꽃술이 숨어 있어 접사로 크게 들여다 보면 신비롭다.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꽃다지가 노란 얼굴을 내밀며 “나 좀 보고 가라” 손짓한다. 공원에는 진분홍빛 광대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그 사이로 파란 봄까치 꽃이 어우러져 봄빛을 즐긴다.


젊을 적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작은 풀꽃과 나물 꽃이, 지금에야 그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할머니가 된 후 손주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느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알고 보니 이런 흔한 풀꽃과 나물 꽃이 모두 약초이기도 하다. 들에 천지로 피어나는 야생화가 바로 한약의 재료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약방이었다. 민들레가 간에 좋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고, 광대나물은 사지 마비와 골절상에 쓰였다 한다. 냉이와 황새냉이는 염증과 천식에 효험이 있고, 냉이와 비슷한 지칭개 또한 항암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3월 중순, 들에 피는 풀꽃 몇 가지의 효능만 적어 보았지만, 봄에 올라오는 풀들은 독성이 없어 식품이 되면서 동시에 생약이 된다.


그래서일까. 풀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고, 그 속성을 알고 나니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봄의 풀은 그 자체로 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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