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by 조지은

중, 고등학생 때 나의 별명은 ‘문제아’였다. 아빠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는 공부를 잘했다. 잘한다는 표현은 꽤나 주관적이고, 그것에는 비교가 되는 어떤 기준이 필요함으로 희생자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언니와 비교하면 공부를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못하는 문제아가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했다. 부모님은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지 언니와 나는 곧 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언니는 보습학원으로, 공부를 못하는 나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개인 과외로 보내졌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아가 되었다.


중, 고등학생 때 나는 이상하게도 성장속도가 느리고 잔병치레도 많았다.

부모님 둘 다 작은 키도 아니었고, 언니는 항상 그 나이에 비해 키가 큰 편에 속했다. 학교의 한 반에 학생 수가 3-40명이 되던 그때, 나는 반에서 키 작은 순서로 4등이었고, 그건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받은 키 작은 랭킹의 제일 우수한 등급이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의 아토피피부염은 자라면서 싹 다 사라졌다는 자신의 경험이 나에게는 들어맞지 않자 나를 한의원으로 데려갔다. 한의사는 맥을 짚어보더니, 내가 키가 안 크는 이유도 다 이 아토피 피부염 때문이라면서 비싼 한약에 키 크는 약재와 아토피 피부가 나아질 거라는 약재를 옵션으로 추가하며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또 유전적으로 우수하지 못한 집안의 문제아가 되었다.


그 별명은 아빠입에서 습관처럼 굳혀졌다. 내가 뭔가를 깜빡했을 때, 아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으이그, 우리 집 문제아”라고 했다. 내가 늦잠을 자 지각했을 때도 “너는 문제아야 문제아“라며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나를 부르는 호칭이 되어 굳혀져 버렸다.


나는 가출을 했다.

중, 고등학생 때는 친구집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해외로 가출을 했다.

경제활동이 제한된 미성년자 신분으로 내가 집을 벗어날 수 있던 것은 친구네 집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않겠다는 나의 계획은 고작 반나절이면 무산되기 일 수였는데, 그건 친구네 엄마는 내 마음보다는 엄마의 마음을 더 이해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나는 장기 가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비밀리에 아주 치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가족 구성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떠나버릴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나는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두고 이 집구석을 영영 떠나 버릴 것이다. 나를 찾지 못하는 아주 먼 곳으로 훌쩍 떠나버릴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장기 가출 프로젝트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한 달간 나는 야간 공장 알바로 200만 원 넘는 돈을 벌었다. 그리고 호주로 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고, 신체검사도 받고, 비행기표도 끊었다. 몰래 주문한 분홍색 대형 케리어에 엄마 아빠 언니 동생이 집에 없는 틈을 타 내 짐을 마구 쑤셔 넣었다. 미션임파서블이 따로 없다. 그리고 미리 써놓은 쪽지를 집에 던져두고 공항으로 줄행랑쳤다.


쪽지에는 나를 찾을 수 있는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을 것이다. 샘통이다.


‘나는 이제 이 집을 떠날 거야, 그러니까 나 찾지 마.’


호주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후아.. 장기 가출 프로젝트 미션 석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