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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은 Dec 17. 2024

[에필로그] 등갈비 김치찌개

18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다고 엄마 아빠는 집을 말끔히 청소해 놓았다. 현관문으로 들어서자 엄마가 반가운 듯 글썽거리는 눈을 하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집은 스킨십이 별로 없는 집안이기에 엄마의 그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글썽거리는 두 눈을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 행동에 그대로 응했다.


“많이 늙었다 엄마… 흰머리는 왜 이렇게 많아졌어? 얼굴에는 자글자글 주름이 잡혀있네… 살도 많이 빠졌고…”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한동안 내 머릿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가출이 벌써 18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가출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나의 밥상은 항상 진수성찬이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집 김치찌개는 언제나 참치캔이 들어가는 참치 김치찌개이다. 대자 사이즈 냄비에 김치와 물 참치캔 한 개를 넣고 한소끔 끓이는 참치 김치찌개에는 추가되는 양념도 없다. 가끔 반찬으로 먹다 남은 알타리 김치나 깍두기가 있으면 그것이 김치찌개에 추가될 뿐이다. 그렇게 한 냄비 끓여놓은 김치찌개는 일주일 동안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라온다. 김치찌개가 올라오는 삼, 사일째가 되는 날이면 이미 참치는 다 골라먹어 없어지고, 계속 데워 뭉근하게 뻘게진 국물과 흐물거리는 김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가출을 하고 돌아온 오늘 나의 식탁 위에는 참치 김치찌개가 아닌 등갈비 김치찌개가 올라와 있었다. 밑반찬을 담아 놓은 반찬통이 냉장고에서 끊임없이 꺼내져 나왔고, 반찬통 뚜껑을 연신 열고 있는 엄마를 향해 동생이 한 마디 뱉었다.


“하 아이고?!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 반찬은 뭐 이리도 많아?”


동생은 엄마를 향해 말했지만, 정해진 청자는 따로 있으리라.

나는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한 나머지 시선을 내 오른편 거실에 틀어져 있는 티브이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밥을 먹는 손놀림을 빨리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따뜻한 집밥이 그리웠던 터라 반찬 이것저것을 입속에 쑤셔 넣었다.


“여보, 얘 배고팠나 봐 밥 더 줘야겠다.”


허겁지겁 먹어치운 내 밥그릇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것인 줄 모르고 있는 아빠가 엄마를 향해 말했다.


“아냐 안 먹어, 나 다이어트”


내가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일어나며 말을 하니, 동생이 콧방귀를 끼듯 대꾸했다.


“흐 언니는 맨날 한국에만 오면 다이어트하더라? 크.. 크큭..”


나는 식탁에서 들고 온 것들을 싱크대에 내려두고 수도꼭지를 올려 물을 틀었다. 밥그릇에 물이 가득 담기게 두었다. 그러곤 괜히 거실 이쪽저쪽을 어슬렁 거리며 어색한 집안을 둘러보다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냉장고와 냉동실 문을 번갈아 가며 열었다 닫았다 했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 맨 밑 야채칸에 있는 귤을 한 개 꺼내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18년간의 나의 부재는 이 집에서 나를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어디서 건너온 것인지 모를 장식품 같은 것들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놓여있는 거실의 진열장, 널브러진 잡동사니 하나 없는 소파와 테이블 위, 머리카락 한 톨 없이 번쩍거리며 따뜻하게 보일러를 넣어 데워놓은 마룻바닥, 나도 모르는 사이 인쇄되어 걸려있는 처음 보는 가족사진이 나를 손님처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의 환대와 등갈비 김치찌개 그리고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내 방이 확실히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쓰던 책상도 침대도 사라졌다.

내 물건들은 대부분이 버려졌지만, 책 몇 가지와 다이어리 등 남아있는 나의 물건은 단 두 개의 라면박스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담겨 주인을 기다린 지 몇 년째이다. 18년 만에 돌아온 우리 집에서 나는 어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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