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기

by 조지은

"엄만 맨날 나만 미워해!!!!! 난 나중에 아기 낳으면 다 똑같이 사랑해 줄 거야!!!!!"


엄마가 그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


내가 울면서 소리친다.


“세게 깨문 손가락은 아프고 살살 깨문 손가락은 안 아픈 거지!!!!!!!!!!!!!”


나는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목청이 터져라 꺼이꺼이 울었다. 무엇 때문에 엄마 손가락의 고통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눈 지는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니는 첫째니까 동생인 내가 참아야 하고, 어린 동생한테는 내가 언니니까 양보해야 했다.




"왜 맨날 내 말은 안 듣는데? 언니랑 생일 같이하기 싫다고 엄마랑 아빠한테 얘기했잖아!!!

왜 맨날 나한테만 그래? 내가 만만해? 난 뭐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이야?

왜 나만 계란후라이 안 해줘? 내가 계란후라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맨날 나만 콩자반 주고... 나도 콩자반 싫어하거든?

통닭도 아저씨가 나 먹으라고 준 건데 닭다리는 언니랑 노을이한테만 주고... 나만 날개 주고... 나도 닭다리 먹을 줄 알거든!!!!"


응답하라 1988에서 둘째 딸 덕선이는 언니랑 삼일 차이나는 생일 때문에 언니랑 생일을 같이한다. 언니의 생일 케이크에 초 세 개를 뽑아버리면 덕선이의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된다. 서러움이 폭발한 덕선이가 소리치는 장면의 대사다.




어렸을 땐 나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다. 난 언니랑 동생에 비해 부모님의 나를 향한 사랑이 항상 부족하다 느끼며 애정결핍을 안은 채 이렇게 커버렸고, 지금은 그들과 전세역전이 되면서 더 이상 그들의 손가락 깨물기에 서러워하지 않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중국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와 있던 나는 엄마의 눈물을 쏙 빼놓은 적이 있다. 화가 난 내가 내 열 손가락 중 엄마 손가락을 콱 깨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복수했고 엄마는 서러울 것이다.


내 안에 쌓여있던 말을 필터링 없이 엄마에게 다 내뱉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울었던 것과 똑같이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살아온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이 10번이나 이사를 했어야 하는 이야기를

그래서 내 초등학교는 3번이나 바뀌고, 중학교는 2번이나 바뀐 이유를

아빠의 직업이 20번이나 바뀌었던 이야기를

아빠가 술을 마셨고, 사고를 쳤고, 우리 집에서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또 쪽지 한 장을 집에 던져두고 떠났다.


'... 저번에 엄마가 울면서 힘들게 살아온 얘기를 했던 게 마음이 아팠고, 그렇게 우리를 키운 게 또 감사하고 그런데 내가 철없이 굴었던 게 속상했어... 나는 지금도 이렇게 철이 없지만, 30살이 다 되어서야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어... 엄마가 견뎌냈던 힘든 세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엄마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를 볼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늙어가는데 나는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게 미안해...'



나는 엄마와 다르게 엄마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왜냐면 난 나중에 아기 낳으면 다 똑같이 사랑해 줄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