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우리 할머니

by 조지은

어렸을 때 언니랑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방학이면 외가 쪽 친척동생들도 할머니네 집으로 모였다. 첫째 삼촌네 친척동생은 민정이 유진이. 둘째 삼촌네 친척동생은 혜선이 정욱이. 셋째 삼촌네 친척동생은 지현이, 호연이다. 모두가 성은 '손'씨다. 언니랑 나만 '이'씨다.


그때 나에게 친할머니는 친할머니였고, 외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설날에도 추석에도 우리만 친할머니네 가는 게 싫었다. 나도 다른 친척동생들처럼 우리 할머니네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할머니가 싫은 게 아니고 우리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였다.


친척동생들은 설날과 추석 당일 할머니네 가서 송편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이 송편은 누가 만들어서 이런 모양이네, 저 동그랑땡은 누가 만들어서 엄청 크다”하고 이야기하면 나는 속으로 질투가 났다.

우리 가족은 그다음 날에야 가서 외할머니랑 친척동생들이 이미 다 만들어놓은 콩이 들어간 송편과 마늘종이 들어간 꼬치 전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친할머니네서 만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보다 외할머니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고, 우리 할머니는 나를 사랑해 주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달팽이 모양의 모기향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후'하고 불면 연기가 피어오르다 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리고 우리들이 다 같이 드러 누어도 충분한 대형 모기장 안에 요와 이불을 주르륵 깔아놓으면, 할머니 전쟁이 시작된다. 할머니 옆에 눕기 위해서.

모기장에는 한번 들어간 사람은 나올 수 없는 규칙이 있었다. 화장실도 가면 안 된다.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모기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 무더운 여름밤, 그 안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친척동생들이 하나둘씩 잠이 들면 나는 그때서야 우리 할머니를 독차지할 수 있었고, 눈꺼풀이 무거워져 눈을 껌벅거리면서도 나는 끝까지 자지 않으려 애를 썼다. 졸리지 않은 척 할머니 품에서 밤새도록 이야기하자고 졸랐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가 내 등을 토닥이면 잠들기 싫은 잠이 들어버린다.



할머니네는 우리 집에 없는 게 있다.


시원한 보리차와

할머니가 타주던 하얗고 달콤한 프림차.


할머니가 내 스케치북에 분홍색 색연필로 그려주는 토끼,

내 발사이즈에 맞춰 그리고 오려서 만들어줬던 종이 슬리퍼.


장미꽃이 촌스럽게 그려져 있는 스테인리스 밥그릇,

8개의 칫솔 중 내 이름이 쓰여있는 분홍색 칫솔.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 보이지 않는 그것을 나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다시 외할머니를 마주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췌장암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한참 지난 뒤였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달 전의 비보였다. 중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외할머니집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고, 내가 해외에 나가면서부터 발길은 끊긴 것이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할머니 앞에서는 나는 아직도 할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은 철부지 10살 소녀였다.

그러나 내가 처음 보는 우는 모습의 할머니..

곧 곁을 떠나갈 사람의 곁을 지키는, 그날이 언제 일지, 하루하루 눈물로 기다리실 할머니… 죽음을 지켜보고 그것을 해내야 할 우리 할머니.


나는 시한부로 이제 곧 세상을 떠나갈 노인을 보고 슬픈 것이 아니라, 우리 할머니가 우는 게 슬퍼서 가슴이 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