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에 들어섰을 때 잘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티가 나는 사람도 있고 덜 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탈모를 치료받으러 온 사람이었다. 나는 탈모 명의를 찾아 남편과 한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왔고, 진료 번호를 받고서도 한 시간쯤 대기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머리 상태를 확인하시려고 일어서서 다가오시더니, 흠칫 놀라며 말씀하셨다. "심하네요. 알고 계셨죠?" 나는 첫 번째로 기분 좋았다.
선생님은 내가 내미는 문진표를 훑어보시고, 그림을 꺼내셨다. 여자 정수리를 위에서 보고 그린 모습이 세 개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정수리 빈 공간이 많아졌다. "지금 ***씨는 중기에서 후기로 가고 있어요"라며 두 번째 사진에서 세 번째 사진 사이를 가리키셨다. 심각한 줄 알았으나, 후기 사진을 보니 미래를 보는 듯 해 마음이 무거웠다. 선생님은 내 표정을 읽으셨던지, "치료 시기가 늦어서 아주 좋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좋아질 거예요"라고 하셨다. 나는 두 번째로 기분 좋았다.
선생님은 문진표를 토대로 치료법을 얘기하셨다. 그런데 나는 문진표에서 교대 근무하는지 확인하던 점이 마음에 걸려, 말씀드렸다. "저는 교대근무는 아니지만, 박사과정생이고, 쌍둥이 네 살짜리 키우는 워킹맘이에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지금 많이 바쁘지요? 앞으로도 몇 년 그렇겠지요?"라고 하셔서, 나는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그랬더니 바르는 약은 하지 맙시다 선언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도 될까요?"라고 물으니, 선생님은 확신에 찬 어투로 "그래도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세 번째로 기분 좋았다.
첫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나만 느끼던 심각성을 의사 선생님께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자기 문제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이전 피부과에서는 나 혼자 심각하게 발동동거리는 듯했지만, 탈모 명의는 내 문제에 같이 맞장구쳐주는 듯했다.
두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좋아질 거란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심각하지만 좋아질 거란 말이 아련하면서도 듣기 좋았다. 심각하다고 못 고치는 건 아니다. 심각해도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
세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탈모에 스트레스가 나쁘다는데, 평소 박사과정에 워킹맘이라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함께 살고 있기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내 상황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임을 인정해주시고, 약 바르는 스트레스를 피하게 해 주셨다. 탈모가 심해진다고 박사를 그만두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육아를 방학할 순 없다. 그렇다고 탈모치료를 내 능력에 넘치게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상황과 능력에 맞춰 치료해보고, 박사학위 따면 약을 바르자고 하셨다. 사실 이전에도 미녹시딜 발랐기 때문에, 약 한 개쯤은 계속 바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 말씀 듣고 바르는 약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병원 나오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내 탈모고민도 평소 상황도, 치료에 투여할 수 있는 능력도, 넉넉히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탈모 명의는 탈모인 마음 명의였나 보다 생각하며, 나도 내담자 마음을 알아주고 희망을 불어넣으며 능력에 맞는 치료를 권하자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