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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꿈 Sep 03. 2022

탈모 명의에게 배운 세 가지

피부과에 들어섰을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티가 나는 사람도 있고  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탈모를 치료받으러  사람이었다. 나는 탈모 명의를 찾아 남편과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왔고, 진료 번호를 받고서도  시간쯤 대기했다.  차례가 되어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머리 상태를 확인하시려고 일어서서 다가오시더니, 흠칫 놀라며 말씀하셨다. "심하네요. 알고 계셨죠?" 나는  번째로 기분 좋았다.


선생님은 내가 내미는 문진표를 훑어보시고, 그림을 꺼내셨다. 여자 정수리를 위에서 보고 그린 모습이 세 개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정수리 빈 공간이 많아졌다. "지금 ***씨는 중기에서 후기로 가고 있어요"라며 두 번째 사진에서 세 번째 사진 사이를 가리키셨다. 심각한 줄 알았으나, 후기 사진을 보니 미래를 보는 듯 해 마음이 무거웠다. 선생님은 내 표정을 읽으셨던지, "치료 시기가 늦어서 아주 좋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좋아질 거예요"라고 하셨다. 나는 두 번째로 기분 좋았다.


선생님은 문진표를 토대로 치료법을 얘기하셨다. 그런데 나는 문진표에서 교대 근무하는지 확인하던 점이 마음에 걸려, 말씀드렸다. "저는 교대근무는 아니지만, 박사과정생이고, 쌍둥이 네 살짜리 키우는 워킹맘이에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지금 많이 바쁘지요? 앞으로도 몇 년 그렇겠지요?"라고 하셔서, 나는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그랬더니 바르는 약은 하지 맙시다 선언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도 될까요?"라고 물으니, 선생님은 확신에 찬 어투로 "그래도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세 번째로 기분 좋았다.


첫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나만 느끼던 심각성을 의사 선생님께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자기 문제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이전 피부과에서는 나 혼자 심각하게 발동동거리는 듯했지만, 탈모 명의는 내 문제에 같이 맞장구쳐주는 듯했다.


두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좋아질 거란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심각하지만 좋아질 거란 말이 아련하면서도 듣기 좋았다. 심각하다고 못 고치는 건 아니다. 심각해도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


세 번째로 기분 좋았던 이유는, 탈모에 스트레스가 나쁘다는데, 평소 박사과정에 워킹맘이라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함께 살고 있기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내 상황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임을 인정해주시고, 약 바르는 스트레스를 피하게 해 주셨다. 탈모가 심해진다고 박사를 그만두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육아를 방학할 순 없다. 그렇다고 탈모치료를 내 능력에 넘치게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상황과 능력에 맞춰 치료해보고, 박사학위 따면 약을 바르자고 하셨다. 사실 이전에도 미녹시딜 발랐기 때문에, 약 한 개쯤은 계속 바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 말씀 듣고 바르는 약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병원 나오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내 탈모고민도 평소 상황도, 치료에 투여할 수 있는 능력도, 넉넉히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탈모 명의는 탈모인 마음 명의였나 보다 생각하며, 나도 내담자 마음을 알아주고 희망을 불어넣으며 능력에 맞는 치료를 권하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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