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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내 세상 26화

실력이 도덕이다 - 김경일

다들 도덕 갖추셨나요?

by 쏘리



p. 290


4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한국 사회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상아탑 마피아'들은 또 다른 새끼 갱스터들을 낳는다.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엄연한 폭력이다. 겉으로 보기엔 젠틀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폭력이다.



(* 4년 간 나는 사회복지학을 배웠다. 졸업하기 위해, 그리고 학점을 취업때 너무 지장가지 않을 정도로만 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래서 학점이 3점대기는 한데 3점 초중반인걸로 기억한다. 공부도 재밌는 과목만 바짝 집중해서 했다. 평소 공부에 미친 학생은 아니였기 때문에 수능도 그냥 도시락 먹으러 가는 수준이었으니 말을 다했다. 상아탑 마피아들은 다른 또 갱스터를 낳는다. 부모가 누군지를 보면 딱 그 자녀 사이즈가 나온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것처럼 부모의 행실이 못되면, 자녀 또한 그 행실이 못된걸 가정안에서 배우고 그대로 사회로 배출된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잘못하면 부모가 가정교육을 못 가르친 것 처럼. 근데 부모 자체가 학력/학벌이 높으면 그 밑에 자녀도 그 정도는 따라가야하거나 아니면 더 곱절로 해야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그러니 그 밑에 태어난 자녀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고, 자녀고 고유한 한 인격체인데 서로 얼마나 장신구를 갖추고 싶어하는지들 그게 자살률에 동조하는 문화다. 정신들 차려라. 뭐 얼마나 훌륭하게 살고 싶은건지 바보들아. 그래봤자 안 행복해요. 행복은 떡볶이와 맥주 앞에 있다 이 말이예요. 그래서 나는 있는 집? 격식 따지는 집? 안 간다. 개노잼임. 내 유머 코드와는 안 맞아요. 그러니 매칭 할 생각하지 마시길요.)



학생들의 수준을 근거로 서열이 매겨졌는데, 이번에는 학교 자체의 능력을 가지고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제는 농땡이 치던 교수들에게는 상당한 자극이 된 것도 사실이다.



(* 엄했던 지도교수님이 계셨다. 그 분의 수업을 듣고, 발야구 출전을 했다가 손가락이 뿌러졌는 데, 손가락 뿌러진 것 까지는 그 교수의 탓을 하지 않겠다. 뭐 청춘일때 학교 생활 이것 저것 하라는 말에 그럼 해볼까? 뭐해보지? 싶어서 발야구를 했는데 다칠 수도 있지 뭘. 근데 내가 그 지도교수한테 마음에 문을 닫았던 건 손가락이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하는데 그걸 안 믿어줬다. 그게 거짓말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줬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니 이 시발새끼가? 결국엔 뭐 물증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열받아가지고 의사가 찍어준 CD CT를 물증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지역 정형외과로 가서 진료를 받았더니 왜 이제 왔냐고 큰 병원 가라고 그래서 충무병원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 때 내 인생 첫 수술이었는데 아마 주치의 한 명에 피라미 의사들이 6명이나 달라붙었나? 실습생들이었나? 아무튼 손가락 하나 수술하는데 소독약을 팔뚝까지 칠하는 거 보고 경기를 잃으켰다. 아무튼 그러고 그 교수는 나를 신뢰하지 않은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뻥을 치고 수업을 쨌으니 진짜로 수술 받아야 하는 나까지도 의심하는 의심병에 걸리셔서 그랬다.



아무튼 그 지도교수는 갑자기 학교에서 수업하는걸 검사한다고 하니 꽤나 불쾌했는지 본인 수업시간에 감시하는게 말이 되냐며 억정내던 때도 있었다. 지도교수여서 사제동행 수업을 패스해야하지만 나는 삔또가 상해서 학생을 믿지 못하는 교수랑 무슨 동행을 하겠다는 건지. 그래서 그의 사무실 앞에서 서성였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또 그 역정내는 모습과 내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을까봐. 그래서 졸업이 딜레이가 됐다. 그래서 찾아갔더니 왜 이제 왔냐고, 근데 나는 이미 몇번 찾아갔는데 돌아가라 그랬다. 샹놈의 색히. 그래서 첫 대학교 지도교수나, 두 번째 지도교수새끼나 교수새끼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근데 이제보니 그 교수들 또한 학생들에게 얼마나 조롱과 상처를 받았을까 싶기도 하다. 나이든 상처받은 고학력자일뿐 나는 내 등록금을 내고 다니지만 좋은 교수 따로 나쁜 교수 따로 이렇게 분류되기 시작했다.



어느 모 교수는 자기 자녀 양육 또한 아무렇지 않게 시키고는 애기를 봐주면 학점을 잘준다는 소문도 돌았다. 나는 마지막 마지막 시험문제엔 답을 모르겠어서 빈 공란으로 두면 성의가 없을까봐 그냥 마지막 학기니까 편지를 썼다. 근데 왠걸 A인가 A+이 나왔다. 근데 그때 당시 학점이 공개되었을때 나보다 공부를 더 하고, 성실하게 답을 적었던 학생은 B가 나온걸 보고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 교수님은 아부와 칭찬을 좋아하셨던 교수님이셨던 것이다. 나는 그냥 편지쓰는 걸 좋아하고, 수업때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걸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 다시 뵐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뭐 이런식으로 다른 문제의 답보다 더 길게 작성을 했다. 근데 그게 정답이 아닌데도 높은 점수를 주셨다. 20대 초반인 나는 의아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내 평균 학점 점수가 올라간걸로 만족했으니까.



어떤 필수교양과목은 내가 정답을 빼곡히 적어 냈음에도 C가 나와서 그 교수랑 대판 싸웠는데 그 다음학기 같은과목 다른 교수로 배치되고나서는 A+을 받았다. 웃기지 않는가? 대학 또한 돈의 장사치 놀음, 그리고 교수라고 다 올곧은 교수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학생들아. 교수라고 다 인격적으로 대단한가? 것도 아니다. 어디 보조를 슬리퍼로 때리고 한 창 뉴스에 이슈였는데, 사람대우를 안해주는 갑질 수준을 넘어서 예비 살인을 하려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조교는 몰래 촬영해서 뉴스에 제보를 했다. 요즘 어떤 세상인데 갑질들을 하고 있을까? 소형카메라, 소형 녹음기 많이 있다.



이제 갑질의 시대는 끝났다. 바로 매장당하고 싶으면 갑질로 프리패스하시면 된다. 아, 근데 돈으로 막아버리려나? 재밌는 유전무죄세상. 음주운전을 해도 돈으로 변호사를 덕지덕지 발라두면 무죄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얼마나 코메디인가?)



고질적 병폐인 학력 위주, 점수, 서열 등 타파하겠다는 기치 아래서 진행 된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들에게 점수를 주는 일이었다.



(* 점수 주는 일이 또 점수를 준다. 그러니 사람이 생각해내는게 고작 점수 서열 나열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 바보 같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기를 못 펴는 이유 중 하나는 점수와 등수 때문이다.



(* 부모들이 기를 못 펴는 이유 또한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기를 못피나? 전혀 본인들의 인생과 무관한데 왜그럴까 왜그렇게 유난들일까 싶은것이다. 막상 자녀의 마음은 자아형성엔 관심이 1도 없다. 그게 자녀를 병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바보같은 유난 떠는 부모들..)



한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가라(진짜)'문화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기회가 되었다.



(* 진짜로 필요한 회의가 아님에도 밥을 먹고 싶어서 돈을 쓰라고 강요받았다. 주객전도가 되어버린다. 예산이 그렇게 쓰여져도 그 누구하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시발, 그래 몇 푼 안되는 그 식사비 많이들 처먹고 다같이 배때지 부른 돼지새끼들 되어보자. 악을 쓰고 그 회의를 다 채웠다. 에혀. 그렇게들 사세요. 뉘에. 서민들아 이게 맞냐? 정직하게 그리고 의미없는 회의들 할 바에 이걸 왜해야하냐고 표정을 뚱하게 하거나 의문을 가졌더니 '사회주의'소리를 듣는다. 사회주의는 나 고등학생때 사회시간에서 배웠을 때 빼고 처음 들어서 어라? 저 사람이 사회주의를 말하다니? 대단한걸? 근데 왜 그런 말을 하지 뒷등으로도 안 들었다. 하여간 윗대가리들은 돈을 쓸 궁리만 하지 그래서 퇴사했다. 자 정치인들아. 윗대가리들아. 이게 내 히스토리다. 하여간 정치하는 새끼들은 어떻게서든 돈을 꾸워먹을 생각만 하지. 그 돈이 어디에 쓰여야한다고는 왜 대가리 속에 안 박아두는지. 그래놓고 뭐? 누굴 위한다고? 내가 처먹은 그 밥들이 고기들이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러니까 공부좀 하고 차라리 솔직하게 그 돈이 탐난다고 해라. 자기 돈 쓰긴 곧죽어도 싫고 쉽게 나온 돈은 아주 개같이들 쓰려고 하는 그 못된 심보 덕에 내가 자살이 마려웠다. 됐냐? 하여간 나라가 못사는게 아니라 도둑년놈들이 많아서 망조가 든거라고 생각해라. 이럴땐 허*영이도 종교적 망상 빼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과정이 어떻든 무조건 마지막 점수가 좋아야 한다는 이른바 '결과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해프닝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아무리 결과과 좋아도 그 과정에서 개구린 짓을 해서 결과가 좋은 거라면 다 뒤집어 엎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



적성이나 취미 운운은 먼 나라 이야기다.



(* 이게 개인의 자아와 존엄성은 개나주고 보여주기 식에 빠져 버린 문화라는 이야기다.)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대학에 들어와 방황하면서 세월을 죽인다.



(* 부모들 때문에 자식이 망했다. 그 놈의 장신구 자녀, 장신구 배우자, 장신구 아주 북치고 장구도 치고 도리도리 뱅뱅들 하셔라. 의사, 검사, 판사, 엄마가 하라고해서? 아빠가 하라고 해서? 그래서 해야 할 직업이냐? 그래서 그렇게 해서 마약처방해주고, 여자친구가 헤어졌다고 살인을 하냐? 보통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을' 입장이라서 자아를 누르고 가스라이팅 당하며 사랑과 칭찬을 갈구 한다. 부모가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 같지요? 절대요. 자녀가 부모를 더 사랑합니다. 부모가 이세상에 전부고, 나를 사랑해주는 첫 번째 인간이니까요. 근데 그 우주가 개차반이면 그 아이는 세상에 던져져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이 사람 기웃 저 사람 기웃 기웃대는 인생만 하다 종칩니다. 그러니까 자녀계획은 신중하게 세우고, 태어난 애기는 행복하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면서 키우세요.)



자기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내놓고 싶은 부모는 거의 없다. 서울대를 못 보내서 한이지 '안 보내는' 부모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대졸인간과 고졸 인간의 한계가 뚜렷하고, '자리'가 뚜렷한 한국사회에서 누가 과연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그 어설픈 실험에 뛰어들겠는가? 겉으로는 학문이라는 양가죽을 쓰고 있지만 내면에는 더티한 난투극이 연속되고 있다. 몇 년 뒤 생길 교수 자리까지 동문을 위해 확보하는 각 대학 동문 선배들의 후배들을 위한 살신성인은 참으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성골과 진골 라인에 들어서기 위한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의 처절한 눈치 싸움은 투견 대회 이상 가는 박진감으로 가득하다.



(* 투견 대회에 굳이 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 투견은 결국 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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