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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세상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기사

리뷰

by 쏘리
화면 캡처 2024-12-07 191152.png




a 씨는 항상 주변인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 직장생활을 5년 정도? 하다 보면,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 또는 나도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나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도 좋은 사람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라는 생각이 점차 쌓여가며 늙어간다. 요 근래, 다들 먹고 사는 거니까, 다들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보니까, 강강 약약 사람이 있듯이, 강약 약강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병적인 의심까진 아니더래도, 무조건 적인 믿음, 신뢰, 인류애를 않고 살아가기엔 세상이 좀 팍팍하다.


믿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속이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데 믿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버리거나 당하려고 믿은 게 아닌데 당한 사람이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그걸 아직도 속으세요? 두 번은 그렇다 쳐도, 세 번부터는 본인 문제이신 거 아시죠? 이렇게 수군수군 또는 다수의 공감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주위의 친절한 사람들이 아무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 때는 '어떤 이유로 이런 호의를 내게 베푸는 거지?', '어떤 나쁜 짓을 하려고 내게 이러는 걸까?'와 같은 끝없는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 보통 진짜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고, 어떤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 자 여기서, 어떤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당설 하기 위해 감언이설처럼 별도 달도 다 따줄게, 너라서, 오빠 믿지? 누나 믿지? 엄빠 믿지? 엄마 아빠 나 믿지? 친구야 나 믿지? 어른이 하는 말이니까 새겨듣고 믿지? 이런 18 연놈들이 진짜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까지도 매도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걸 구분하는 눈과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하지만 모든 과하면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경계하고 사람을 믿지 않게 되면, 편집증 성격장애 또는 편집증 조현병이라는 부제가 붙어버린다. 그러니까 모든 적당히. 그리고, ~~ 믿지?라는 말 자체가 잘 못된 거는 아니지만, 저 말만 너무 남발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a 씨는 편집성 성격장애 증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진단이 아닌 증상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증상은 누구나 있을 수 있지만, 진단을 받기까지엔 기간이라는 게 있다. 일시적으로 누군가한테 뒤통수를 당한 경험이 생겨버리면 저런 증상이 생존을 위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단, 그 경험이 희미해지면, 저 모드가 조금은 해소되어야 하는데 점점 더 굳어지면 그거는 증상이 오래가면서 진단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위험한 일은 덜 당할 수 있지만, 되려 좋은 인연 또는 좋은 경험도 놓칠 수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동

기를 부정적으로 해석합니다.


(*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기본적인 베이스가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다. 타인에 대한 경계 모드를 조금 넘어선 의심과 불신. 경계<<<의심<<<불신? 이 정도 단계라고 해야 할까 선풍기의 미풍, 중풍, 강풍이 있듯이 경계=미풍, 의심=중풍, 강풍=불신 나는 이렇게 느껴진다.)


정서적으로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없으며, 갈등상황에 처했을 때도 타협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합니다.


(* 당연히 타인에 대한 경계, 의심, 불신이라는 것이 베이스라면 정서적으로 밝은 모습 보단,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덜할 수밖에 없고, 갈등상황이 처했을 땐, 피하는 게 상책이지 하며 굳이 타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단, 여기서 타협이라는 것은, 타협이 통하는 사람, 또는 내가 타협을 해서 그럼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져주고 넘어간다. 내 상식선에는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놓치기 싫은 사람, 그리고 싸워서 서로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기 싫은 사람한테는 타협이라는 말보단,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해 주고, 함께할지 더 맞는 사람을 찾아갈지 결정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 사랑을 진짜 많이 줘야 변한다. 근데 그 사랑을 많이 줄 수 있는지, 내 에너지가 고갈될 정도로 계속 사랑을 줘야 하는 건 아닌지, 나 자신까지 잃어가면서까지 사랑을 주는 건 아닌지. 뭐, 이런 정도의 고민과 과정들을 거쳐서 결정이 난다. 근데 보통 결혼이거나 부모-자녀관계는 철륜이기에 쉽지 않다. 1차 집단과 2차 집단을 두고 보면 2차 집단은 그냥 안 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1차 집단은 쉽지 않다.)


주변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자주 보여 다툼이 잦고, 작은 일에도 심한 분노를 보입니다.


(* 자칫 그냥 사람에 대한 관심이 낮을 뿐인데, 무시하는 태도로 비출 수 있고, 그로 인해 무시하려고 한 게 아닌데 상대는 나에게 왜 관심을 주지 않지? 하면서 은근 서운한 마음에 시비를 걸거나, 내 마음과 같지 않는 마음을 건강한 아이메시지가 아닌 방법으로 표현하니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건강한 아이메시지가 아닌 방법으로 대화를 걸어오거나 아님 그런 티를 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그거에 대한 노이로제가 걸려서 심한 분노까진 아니어도, 혀를 끌끌 차거나, 솔직하게 친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 마음을 강요하는 게 아닌 짝사랑처럼, 나는 아직 5인데 상대는 아직 2구나, 그리고 평생 2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상대 마음 =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간격을 좁혀가거나 그 간격을 인정하며 지내야 하는데 그게 다들 잘 안 된다. )


그리고 이들은 권력이나 순위에도 집착하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습니다.


(*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저런 특이점이 있어서 성공한 걸까? 나는 편집성은 선천적인 게 아닌 후천적인 것에 더 가깝게 자리 잡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된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사람을 불신, 경계, 의심하는 애기들은 없다. 부모-자녀 응애응애 태어나 eye contact을 하고, 주 양육자와의 관계 맺음이 사회 밖에 나와서 유치원이든, 어디든 같은 틀로 적용된다고 책에서 봤다. 태어났는데 부모가 없어도 주 양육자가 꼭 아빠 엄마 일필요는 없다. 태어났는데, 시설이라던지, 아니면 조부모님이라던지. 그냥 유아기 때 가장 보살펴준 사람이 주양육자가 된다. 그래서 편집성은 어떠한 계기가 그 사람에게 큰 에피소드가 되어서 방어기제로 생기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성 성격장애 원인으로 아동기 초기 단계에 애정 결핍 또는 학대 경험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아동기 초기에 애정 결핍, 학대 경험 예 : 부모로부터 버림받음,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언어적 폭력 등은 모든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 병의 모양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될지 성 도착증 환자가 될지는 각 개인의 고유함에 따라 다르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 부모님들, 함부로 부모가 되는 것은 비극이다.라는 프랑스 영화인지, 어떤 영화인지 분명 있는데, 그 영화 주인공은 남자고, 교사였던 것 같고. 그 영화를 아시는 분은 댓글이나 쪽지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이,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축복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에 맞게 노력을 선택적으로 하셔야 할 게 아니라 무조건, must have 하셔야 한다. 무지 어렵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정립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


즉, 유년기 동안 엄격한 양육 태도나 학대 경험으로 인해 지나친 처벌 경험이 있는 경우, 이러한 가학적 태도를 내면화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표출하게 되고, 그 결과 지나친 불신과 의심의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학대를 하거나 엄격한 양육태도는 없으셨다. 눈높이 문제집을 풀지 않아서 몰래 숨겨 놓고, 문제는 다 풀었는데 문제집이 사라졌어요 거짓말을 한다거나, 풀기로 해놓고 안 풀었거나 하면 빗자루 손잡이로 발바닥이나 손바닥 맞은 게 전부다. 물론 이유가 없어서 처벌하신 게 아니라 이유가 있는 처벌이기에 그 처벌이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아 진짜 문제집 풀기 싫은데 라는 마음뿐이었다. 억울한 처벌에 대한 기억은 하나 있다. 엄마가 드라마 보는데 오빠랑 너무 시끄럽게 싸웠나? 장난을 쳤나? 시끄럽다고 집 밖으로 쫓겨났다. 이건 좀 억울했다. 엄마가 드라마를 안 봤으면,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쫓겨날 일까진 아니었을 것 같은데. )


또 다른 요인으로 지나친 간섭이나 통제적인 양육태도는 사람에 대한 적대적 신념을 형성시켜 편집성 성격장애로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 간섭과 통제적 양육태도가 왜 적대적 신념을 형성시키냐면, 보통 모든 사람들은 간섭이나 통제를 받게 되면 본인의 자율성을 침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율성이 침해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간섭과 통제는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 런 사람에 접촉을 피하기 위해 또는 접촉 횟수를 줄이기 위해 적대적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즉 비호감 또는 피하고 싶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어느 누가 간섭과 통제를 좋아하겠는가? 아,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은 좋아할 수 도 있겠다. 모든 100% 는 없으니까요.)


일관되지 않는 양육태도 역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충분히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들지 못하게 하여 불신과 의심의 태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 기분파같이 어떨 땐, 모든 걸 다 허용해 주는 부모였다가 어떨 땐 다 안 된다고 했다가. 도대체 우리 부모님은 왜 저럴까? 하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되면, 불신과 의심.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몰라. 속지 말아야 해, 믿지 말아야 해. 저거 또 기분에 따라, 저 상사, 저 부하 기분에 따라. 기분이 좋은 날에 결재 올리자, 기분이 좋은 날에 사달라고 하자, 기분이 좋은 날에 놀러 가자고 하자. 이렇게 선택적으로 눈치를 보며 소통하게 되는 일이 생겨버리게 된다.)


가장 가까운 존재의 변하기 쉬운 모습을 통해 따뜻하고 일관된 경험을 못하면, 이후 애착관계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부정적 관계 맺음은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끊어야 되는 걸 알면서도 그 관계에 머무르게 되는 건, 건강한 관계 맺음의 경험이 없거나, 또는 그 빈도나 경험이 미미해서, 낯설 수도 있고, 이미 익숙해져 버린 패턴을 바꾸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거저 생기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좋은 관계를 쌓고 싶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라는 마인드보다는 이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바꿔보자 라는 생각을 자주 해주는 게 좋다.)


이 밖에도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난 까다로운 기질과 가족 내 문제 등이 편집성 성격장애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까다로운 기질, 이건 베이스 적인 부분이기에 이런 기질이 꼭 편집성 장애가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는 얘기고, 그럴 확률에 속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그런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기질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기질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갖고 놀면 된다. 가족 내 문제나 갈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계속 그런 환경에 노출된다면, 물리적으로 분리가 필요하다.)


보통 아래 증상 중 4가지 이상 해당되면 편집성 성격에 해당한다고 의심해 볼 수 있다.


(* 여기서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의심이다. 의심이 자칫 부정적 단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의심은 확정이 아니다. 그러니까 또 너무 나 편집성 성격장애 아니야? 이런 오바쌈바 금지.)


(* 약간 어라?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좀 너프 하게 바뀌어가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면 좋을 듯하다.)


1.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고 해를 끼친다고 의심.


(* 내가 상대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상대가 이미 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때, 나는 분명 이 사람한테 내 입으로 말한 적 없는데 이미 알고 있을 때, 이건 뭐 내가 말한 사람들 중 건너 들었거나, 그 사람이 관찰력이 좋거나, 그 사람이 나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 내가 오픈해 둔 정보들을 접했거나, 뭐 이 중에 하나다.)


2.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신뢰에 대해 의심


(* 이거는 아묻따 신뢰라기보단, 아무 접점이 없으면 의심할 이유도 껀덕지도 없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으로 비밀을 털어놓는 것에 두려움을 느낌.


(* 이거는 생활의 꿀팁이긴 한데, 이거 비밀인데~ 하면서 말하는 건 우스갯소리로 이상에 비밀이 없는 것, 그리고 속담 중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는 말처럼 비밀은 없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나면 사람은 대부분 입이 근질근질하거나 나도 모르게 그 비밀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고의가 아님에도, 그렇기에 애초부터 그런 1급 기밀이나, 비밀이나,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얘기들을 좋아하는 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구설수 또는 입방아, 또는 그냥 그런 것들로 시간낭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제치면 된다. 보통, 이 사람 조심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 조심해라고 말해주는 그 둘의 관계지 나와의 관계도 나쁠 일은 없을 수 있기에, 단, 주변 평판 90%가 그런 사람이거나, 범죄행위가 빼박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까 평판도 양쪽입장 다 듣고 난 후에 내 관계에 적용해도 늦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4. 악의 없는 말이나 사건에 대해 위협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함.


(* 개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장난기가 많다. 악의 없는 말들이지만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맞장구를 치거나, 누구는 그 말을 듣고 인성 쓰레기네 하거나. 그거는 상대적인 것 같다. 단, 악의 없는 말을 했는데 상대가 불쾌해한다면, 나는 그럴 의도가 없는데 상대가 그렇다고 표현을 하면 자중해야 한다.


그래서 진담과 농담을 구분하는 방법은, 나는 농담일지라도 상대가 농담이 아니라 상처였더라고 한다면, 너 왜 이렇게 소심해, 너 왜 이렇게 여려,라고 할게 아니라 아, 미안해 조심할게.라고 말하면 된다. 근데 눈치 없이 지 생각만 하는 지만 농담이었다고 얼버무리는 사람은 그냥 손절처라. 손절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기 싫지만, 카톡에 차단 기능을 왜 넣었겠는가? 도무지 신호나, 사인을 줘도 못 알아듣고 계속 들이대는 사람은 최소한에 거절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를 위해 생겨난 기능이 아닌가 싶다.


단, 누군가를 차단을 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차단당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나는 누구를 차단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차단 안 당할 거야 라는 마음은 어린 마음이다. 차단받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괜찮다. 두세 번은 차단당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인생 경험이다. 차단받은 거에 또 너무 상처받거나 집착하지 마라.


차단을 한 사람보다 차단을 안 해준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 차단 안 해 준 사람하고 놀거나 함께 인생을 즐기면 된다. )


5. 적절한 비판을 모욕이나 경멸로 간주하여 지속적으로 원한을 가짐.


(* 적절한 비판, 즉 비난이 아닌 비판.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상대의 고칠 점이 보이면 그걸 꼭 굳이 집어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고, 돌려서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가지각색이다. 그러니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가지각색이다. 예로 나는 큰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메인 총괄 담당자가 되었는데,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상사가 피드백을 많이 주셨다. 나는, 저녁식사 중이었고, 혼자가 아닌 타 팀 상사와 밥을 먹고 있어서 카톡 확인은 했지만, 바로 답장드리기가 어려웠다.


나는 카톡을 보면 바로 답장하는 케이스 기는 한데, 보통 나는 확인하면 단답이라도 하는 편이다. 읽씹이나 안 읽십보다는 단답이라도, 단답보다는 성의 있는 답장이 좋다는 걸 알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단답, 읽씹, 안 읽십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거는 꼭 그 피치 못할 상황이 지나면 보수 공사를 해주어야 한다. 실은 상황이 이래서 답장이 아까는 짧았는데 지금은 가능해~라는 말. 돈 안 드니까, 해야 한다.


상사가 되어본 적 없지만, 상사님들은 피드백을 줄 때도 가지각색이다. 피드백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줘야, 성장할 수 있지라고 하면서 살얼음판, 같은 피드백을 주는 상사 또는 피드백 자체가 부하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선 칭찬 후 부정적 평가,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사람은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그 비판을 받은 시점에 놓인 상황과 맥락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보통은 친해지거나 가까워지면 그 사람에게 부정적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근데 나는 그랬다. 전혀 기분 나쁜 게 없고 다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이고, 이건 저에 대한 평가가 아닌 계획서에 대한 평가기 때문에 괜찮다고.


상사분은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피드백을 더 열심히 주셨다.


단, 여기서 내가 느낀 건 피드백을 어떻게 좀 더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뿐, 그것 또한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과하거나 또는 이미 다 쏟아낸 결과물이라 생각했지만

더 에너지를 쏟아 내야 한다면? 난 이제 할 만큼 한 건데 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되는 지점과,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다.

이거는 뭐 직장인이라면 불가피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지 않나 싶다.


이럴 때 꿀팁은

언젠가 행사는 끝난다.

행사가 망하는 거지 내가 망하나?


이런 마음으로 하는 게 좀 가볍다.

365일 행사 당일도 아니고,

행사가 망하지 내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즐긴다.


아, 물론 망해도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다음은 또 있다.


단, 또 이런 패턴으로 굳어지면,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니까

모든 적당한 마음으로 스트레스 댐을 조절해야 한다.)


아무튼, 비난과 비판을 구분해야 하는데

그 상황과 맥락 그리고 비난과 비판을 주는 상대에 대한 위치나 상황적인 부분들도

고려해야 하며, 제일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닌

나의 행위, 나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일을 위해

그리고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


물론, 이 정도면 통과될 법도 한데 쥐어짜 내는 피드백을 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건 그냥 적당히 걸러 넘기거나, 애교 부리는 스킬을 키우는 것도 좋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렇다고 맨날 방긋 웃지 말고.


어느 정도 사인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부하 : 에이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상사 : 어림도 없지.


그 사이에서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직장이고 일이고

사회생활이고 처세술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상 사람인지라 잘 안되지만


먹고살려면 해야 한다.

그 상사도 그렇게 더 윗 상사에게 그렇게 해서 먹고 산다.


상사라고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각자 스트레스는 각자 몫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어디 가서 뺨 맞고

뺨 맞은 사람한테 맞다를 떠야지


괜히 연약한 사람한테

화풀이나 하소연이나 하지 말자는 말이다.)


6.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에 대해 화를 내거나 반격함.


(*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여기서 진짜 공격인지 아닌지는 본인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거라, 누구는 스치기만 해도 버럭, 누구는 스쳤는데도 그럴 수 있지 뭐,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화를 내거나 반격한다.


또 재밌는 건 똑같이 스쳤는데, 누가 스쳤느냐에 따라서도 반응이 갈린다.


차은우가 스쳤으면, 아예 어깨빵을 해주고 가지 ㅠㅠ 엉엉 아쉬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스쳤으면, 아니 눈앞에 서잇기라도 한다면

아, 또 만났네 이런.


이렇게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니

릴랙스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게 아닌 선택적 반격이라면,

그건 적당히 하다가 독소가 빠지면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분리되거나 그냥 생각에서 지워버리는 게 제일 베스트다.)


7. 정당한 이유 없이 애인이나 배우자를 의심함.


(* 정당한 이유, 이것도 상대적인 것 같긴 한데 보통 누가 봐도 도가 지나친 상황이면 자중해야 하는 것이 맞고, 도가 지나치기 시작하는 그 시점을 그 지점을 잘 봐야 한다. 분명 거슬리는 일이 있었다. 그게 평균치인지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 문제는 환자 스스로는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편이라 생각을 하여 주변으로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합리적, 이성적, 주로 정치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합리적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주변이 피곤할까 본인이 피곤할까?)


그래서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치료를 권유하는 가족이나 지인과 같은 주변인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


(* 합리적 ,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니 비논리적, 비합리적이 아닌데 왜? 내가 왜?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보통 본인이 괴로우면 정신과를 찾아오지만, 본인이 괴롭지 않은데 왜? 그래서 치료를 받지 않는다. )


따라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중요, 치료 시에 반복되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거나, 우울한 증상 및 분노 조절 어려움, 피해 사고에 따른 불안 정도를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나 같은 경우엔 사과를 원했지만 그 과정이 없었고, 사과를 해달라고 해서 해줄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누군가 나에게 사과를 원하면 내가 그럴 의도가 없어도 하는 편인데,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냥 묻고 가거나 똥 밟았다 생각하지 뭐, 이렇게 넘기는 편이 속편 한데. 보통 사람은 억울한 일, 속상한 일, 서운한 일이 생기면 그 사과의 과정 없이는 최소한의 절차가 없이는 그 시간, 그 생각에 계속 사로 잡힌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에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한다면 3초도 안 걸린다. 그리고 해줘라. 그리고 미안하다고 해라. 그 말 한마디를 못해서, 괜히 주변에 척지게 하거나 상대방을 나무라지 말고, 왜 어릴 땐, 유치원생들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더 잘 표현하는 건, 감정표현이 솔직한 건, 충동적이 여서도 아니고, 어려서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바를 여과 없이 말하는 게 잘 못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여과 없이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어쩔 땐, 그 상처를 빠르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연결다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근데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 옹고집인지 뭔지. 감정표현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더 어른답다고 생각해서일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서운하면 서운하다. 이래서 그랬다.라는 말들을 하는 게, 솔직하면 무례하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 또한 그 취향이니 존중. 하지만 모든 문제해결은 대화와 표현에서부터 시작된다. 근데 그 그 대화와 표현을 이미 했음에도 그때 그 기회를 놓치고, 그 기회를 거절하고, 나중에서야, 또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건, 딱 거기까지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 또는 직장 내에서 관계에서 그런 기회를 줄 때 잡아라.


가해자의 기회 : 너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게. 너 나한테 잘 보이면, 너 아부 아첨 떨면, 내 입맛대로 해주면 좋고 멋진 기회를 줄게.


피해자의 기회 : 그런 거 원한적 바란 적 없습니다. 저는 입맛대로 안 해도 제 소신 가치관 존중받고 싶습니다. 저도 그래야 존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쌍방입니다. 쌍방.

이왕이면 어른이면, 선배라면 좀 더 넓은 마음을 보여주세요. 후배에게 선 존중 후 존경이 아니라, 선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정신치료를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약물치료가 증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어 병행하기도 합니다.


(* 이 부분은 공부를 아직 못해서, 쓸 수 있는 말이 한정되네요.)


망상적 지각과 관련된 증상 조절에는 항정신병 약물이 도움 되고, 불안 증상에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치료 시 환자가 망상적인 지각을 통해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 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 모든 관계는 공감으로부터,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 잊지 마세요. 사랑해요. 찡긋.)


직접적 해석보다 장기적 관계 형성과 존중의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 존중의 태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고운 말을 듣고 싶다면, 내가 먼저 고운 말 하기. 고운 말 했는데도 고운 말이 안 돌아오면 도망가기!)


끝.



추가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좋은 호기심일 수 있지만.

그게 상대에겐 집착처럼, 그리고 수요 없는 공급 호기심일 수 있다.


그러니 멀리서 바라봐주는 것도,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이기에

이게 다 100% 맞다곤 할 수는 없다.



100%가 아닌 금요일이 되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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