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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GRITY)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면(2)

나는 어디에 오르고 싶은 걸까?

by 쏘리
세이노의 가르침 표지.png



p. 187

the quality of being honest and having strong moral principles : moral uprightness (정직하고 강력한 도덕 원칙을 갖는 자질 : 도덕적 옳음)


the state of being whole and undivided (분열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


영어권 국가에서는 인테그리티를 매우 중요시한다.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인테그리티를 정의할 때 대부분 정의에 주목하고 인용한다. 나는 두 번째 '분열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에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과 가치관,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고 일치하는 상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상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 그래서 인테그리티 한 사람은 일관성이 있다.


(* 윤리, 도덕과목을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건 생각이 잘 나질 않고,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여자선생님이 도덕을 맡아주셨는데, 똘레랑스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관용이라는 뜻이었다. 도덕 주관식 문제로 나왔었고, 당시 나는 서여중 앞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는데, 그 컴퓨터 학원 입구에는 친구 어머님이 3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천막 포장마차로 분식을 파셨고, 나는 학원 수업이 끝나면 떡볶이를 먹는 게 내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우연히 도덕선생님을 만났고 그때 떡볶이를 사주셨던 기억이 남는다. 떡볶이를 사주셔서 도덕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내가 원래 도덕적인 사람인지라 도덕을 중요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뭐가 됐든 간에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겠지 싶다.


여기서 인테그리티 단어를 보고 떠오른 게 '관용'이다. 서로 연관성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관용 또한 중요한 자질이라 생각이 든다. 관용(寬容, 영어: toleration) 또는 톨레랑스(프랑스어: tolérance)는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 출처 네이버


그때 여자 도덕선생님이 똘레랑스를 많이 강조해 주셨고, 14살인 내 입장에선 영어 공부도 어려운데 똘레랑스 단어는 참 신선해서 머리에 오래 기억에 남기도 했다. 그리고 도덕 같은 경우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는 영역이어서 내가 좋아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념. 지금 우리 시점에서도 관용적인 자세가 많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 말은 맞고 당신 말은 틀려가 아닌 내 말도 맞고 당신 말도 맞다. 다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는 문제일 뿐이지 그 사이에서 금이 가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헐뜯고 비방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그런 무의미한 시간은 오래 갖지 않았으면 한다.


문제 해결책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존중, 존엄, 귀함을 알 때 비로소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려운 것 하나 없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지 못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인테그레티가 있는 사람일까?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타인들이 보기엔 일관성이 없어 보였을까? 내가 왜 일관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 사이에 나는 어떤 상황과 심정을 느꼈는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정작 돌이켜 보면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독이었구나를 알게 된 후부턴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았고, 앞으로의 내 선택 또한 자신이 없어지게 됐다. 나는 이 세상엔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 깜빵에 갔겠거니, 성악설을 한 번도 믿어본 적 없고 성선설인데 성무선악설처럼 주변에 영향을 받아 악하게 변할 수 있겠구나. 다만 그 악도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받으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사람은 잘 안 변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고. 그 사람의 삶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점쟁이들 말에 그리 맹신하지 않는 이유도 이미 정해진 인생이라면 뭣하러 애를 쓰고 살까 싶어서 그렇다. 영화 예고편처럼 미리 들여다보는 게 영화의 재미를 더 유발할까? 아니면 흥미를 떨어뜨릴까? 뭐 비슷한 것 같다.


연애운/재물운/사주팔자. 다 지금 본인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 본다고들 하는데 그럴 땐 점쟁이를 찾아가기보다 자신의 과거가 어땠는지를 뒤돌아보고, 어디 지점에서 아쉬웠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그 아쉬운 지점들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혼자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고 적어 내려 가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적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를 죄다 꺼내다가 들춰봤다. 나라는 사람의 색깔이 뭔가 싶어서.


두 번 퇴사한 곳에서 다시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다 있는 자리에서 최고상부는 그런 말을 내뱉으셨다. 자기만에 색깔이 없다고. 면접을 보고 자취방에 돌아와서 자기 전에 생각을 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내가 자기주장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너무 타인에 휘둘려서 지내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뚜렷한 모습이 없었나. 열심히 일하던 친구가 소진이 되어 잠시 일을 쉬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던 분이셨다.


1억 6천이라는 대출을 받았을 때에도 인생공부했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서 갚아나가라고 하셨었다. 근데 내가 빚을 져본 적이 있어야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몇 십 년을 갚아나가야 할 금액 남들은 다 그렇게 산다고 절대 천재지변처럼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서른 넘었는데 대출 안 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근데 왜 그렇게 겁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얽매여있는 삶이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근데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깨달았을 땐 방법이 없나. 좋은 곳에 살고는 싶고, 얽매이기는 싫고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도 없고. 그래서 답이 없어서 그랬다. 그게 어른의 무게라고 하던가. 해맑은 내게 "이제 고민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 거야."라고 하셨는데 내가 했던 고민은 어떤 치킨을 먹을까. 오늘은 누구랑 만나서 놀지? 무슨 영화 개봉했는데 그거 볼까? 어디 sns 인스타 맛집 가서 웨이팅 하고 인증사진 올릴까? 뭐 이런 고민만 하던 내가. 인생의 무게를 알리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무게였는지를 알게 된 시점이 왔던 것뿐이다.)


(*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 사람이 언제 괴로운지 아는가? 아닌 걸 해야 할 때. 옳지 않은데 그걸 억지로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매우 괴롭다. 그럴 땐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하나니까. 나는 그럴 때 괴로웠고, 내 선택은 내팽개치는 것뿐이었다. 그거에 대한 매뉴얼이나 연습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은 윗자리를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있었고, 그 괴로움 사이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를 살펴보다 보니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보지 않는 것. 그냥 한 쪽눈은 감고 사는 거지라고 아무렇게 말씀은 하셨지만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까지 그 선배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삼키고 못 본 척을 하셨을까 싶었던 것이다. 양쪽 눈 시력은 멀쩡한데 보고도 보지 않았다니. 그 연습이 나는 얼마나 어렵던지. 하지만 인생은 죽을 때까지 연습이라는 걸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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