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리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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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시절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을 죽이고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자기 방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심정을 이해하는가?
(* 나는 학창시절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반대로 누굴 괴롭힌 적도 없다. 웃고 떠들고, 그냥 반에 한 명쯤 있는 여고생중에 하나였다. 학창시절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묻는다면 가족이지 않았을까? 근데 그 감정은 다이어리에 적었었다. 다람쥐 모양의 다이어리었는데 아마 친오빠와 아빠였을 것이다.
연년생인 오빠는 나에게 딱히 좋은 오빠는 아니였다. 이 글을 본다면 어차피 유년시절에 일이니 그냥 넘겨라. 나한텐 그다지 좋은 오빠는 아니였다. 반대로 나도 그다지 좋은 여동생은 아니였으려나 싶다. 아무튼 가족 중에 있는 남성들이 별로였으니 내 인식도 남자들은 별로였나 싶기도 했다. 현재는 아버지나 친오빠나 그냥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어차피 나는 2023년도 연말쯤 내 마음속으로 다 연을 끊었다. 없는 셈치고 그냥 살아가는 중이다. 연기는 아니고 그냥 뭐랄까 그렇다. 가족인데 가족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어느정도 이게 분리가 되어간다고 해야하나. 가족이긴 한데 그렇게 내 기대치에 집어 넣진 않는다. 내가 꿈꿨던 아버지의 모습, 내가 꿈꾼 엄마라는 모습, 오빠라는 모습은 이제 없다는 의미다. 어차피 나도 완벽한 딸이나 여동생이 아니였을테니까. 서로 기대를 안 하기로 했다. 그냥 각자 1인 몫만 잘하면 그만이다. )
나는 이해한다. 나는 주먹으로 피가 나오도록 방바닥을 치고 거울을 깨부순 적도 있었다.
(* 나는 자해를 한 적이 없다. 자살사고가 심했다. 아무래도 그러한 과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그게 방지턱이였을까? 성공경험이나 보호요인들이 많아서 그랬나? 그냥 뒤져버리자. 생각은 가득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니 방법을 알고 있는데 실제 내가 면담한 한 내담자들 처럼 자살할려고 생각하니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자니 집값이 걱정되요. 철도에 뛰어들자니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러울까봐 참았어요 등등 수없이 망설이셨던 말들이 스쳐지나가면서 나도 그 고민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무래도 내가 수도 없이 만나온 내담자 분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이 나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었구나. 라는 걸 지독하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희망은 안 보이는데 견뎌 내라니. 세상은 이른바 배웠다는 위선자들로 가득 차 있는데 기쁨의 날이 올 것을 믿으라니. 돈 봉투를 안 가져온다고 나를 책망한 담임은 어느 날 모범 교사로 칭송을 받고(나중에 교장까지 되었다.), 나는 자원입대하였는데 멀쩡한 부잣집 친구들을 징집면제되고, 그런데 지나가는 시간이 훗날 소중하게 된다니 그것을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 한 창 삶에 의미가 없을 땐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살 예방 문구도 그냥 글자일 뿐 그 글자가 전혀 자살사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미한 자살사고라면 그 예방 문구에 먹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심할 땐 주변 사물이나 사람자체가 인식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내 감정이, 내 생각만이 우선이게 된다.
오히려 긍정의 문구나 정서적 지지가 약올리는 것 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같이 욕을 해주거나 같이 씹어주는 게 훨 나았던 것 같다. 자살이라는 건 한 순간의 선택 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자살시도 까지 가는 건 수 없는 고민과 연습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첫 시작을 하게 된다.
물론 정신질환 60퍼, 그 외 사유 40퍼라고 하지만 각 나이대별로 느끼는 삶의 무게와 문제들은 제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개인의 고유한 문제는 깊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살펴보기가 어렵다. on set 지점을 잘 파악해야하는데 그게 한 번의 면담으로 열 번의 면담으로 찾아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내담자의 면담의 의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의지가 있어도 어떻게 면담에 임해야할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고, 기대감이 충족이 안되거나 용기내서 갔지만 다시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장에 눈에 띠는 변화들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해결책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발걸음을 멈추는 것 같다. 정신과 병원이나 약같은 경우엔 서브라면, 메인은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 그리고 스트레스 요인을 가지치기 해야한다. 제일 큰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내는 것. 정신과 약은 일상 생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부스터 같은거라면 어쨌든 일상생활을 달리는 건 본인이니까 본체 관리도 해줘야 한다. 그 본체는 어디갈때 고장이 나는지, 어디에 가면 느슨해지는지 누구랑 있으면 기분이 다운되는지. 누가 에너지를 뺏어가는지. 누가 내 에너지를 채워주는지. 그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만약 아무도 주변에 없는 것 같다면 본인의 과거를 되짚어 본다.
내가 자살사고가 전혀 없던 때가 언제 였지? 그 때가 몇살이었지? 언제 생겼지? 그 원인은 가족이었나? 대부분 아쉽게도 가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되려 큰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근데 그 과정에서 내가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 나에겐 좋은 존재였는데 나한테 가해를 했다고 생각해도 되나? 응. 된다. 미워해도 된다. 대부분 어린 자녀같은 경우엔 부모가 전부여서 부모의 잘못된 사랑방식에도 그게 잘못된지 모르고 고대로 흡수하거나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그 감정을 누른다. 그러면서 부모가 또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양가감정이 아주 널뛰기 날뛰기 이런 메뚜기 같을 수 없다. 근데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냥 흐르게 냅두면 된다.
어디에다 흘려보낼지는 본인 선택이다. 1. 상담실 2. 좋아하는 장소 3. 일기장 4. 그 외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정도 가닥이 나올 수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 배운자들의 위선을 보고있노라면 그냥 웃긴다. 나는 그렇게 학벌이나 학력이 높지는 않은데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나보다 못할 때를 보면 엥? 교수 맞아? 박사 맞아? 엥? 선배 맞아? 엥? 엥파리가 된다. 낮은 연차일땐 속으로 엥엥거리지만 연차가 차니까 아우.. 그러면 안되는데 속마음이 자꾸 입밖으로 나와서 탈이다. 이거 입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지만.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면 병이 난다는걸 알아버려서 이젠 에라모르겠다. 해버린다.)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를 폭파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처럼 세상이 뒤집힐 전쟁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 내 친구중에 계속 지구가 폭발했으면 좋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순수하다. 나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폭발하는건 그냥 내 속만 뒤집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