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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시3

여행자의 답시.

by 쏘리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오늘도 입금된 하루를

어떻게 여행할 지 고민하는 하루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길 떠나야 하리


과거의 상념 속에서 현재를 다시 설계하기도

미래를 그리지 않지만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설계하기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새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나는 얼마나 뒤돌아 보고 있는가

정답은 뒤에 없다고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계속 뒤를 돌아보는 인생을 살아갈 수 도 있다.


그러니 뒤를 살피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또한

그 나름의 길이다.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나는 불꽃같이 꽃을 피웠다.

꽃을 피우는 지도 모른채.

내가 꽃인지도 모른채.


그러다가 이젠 시들해져서 죽고 싶었다.

더 이상 불꽃처럼 살 에너지도

그리고 불꽃처럼 살 수 없음을 안 순간.


죽음뿐이다 싶었다.

평생을 칙칙하게 살기 싫었다.


그래서 짧고 굵게, 그게 아니라면 그 지루한 인생 다들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다. 부모님이 존경스러웠다.


이 지겨운 인생. 죽지 못해 산다.

근데 또 죽는게 쉬울까.

주변에선 가만히 냅두지 않는다.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답답한 마음에 새벽 4시에 밖에 나가

쓰레기를 줍는다.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진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같은 시간이라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싶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아무리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밖을 나가도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블루베리를 따고 있었다.


세상은 이렇다.

내가 일찍 일어난 사람이겠지.

싶지만 나보다 더 일찍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죽고싶을땐 눈 뜨는게 뭔 의미가 있나 싶어서

죽고싶을땐 화장이 뭔 의미가, 옷이 뭔 의미가, 돈이 뭔 의미가.


씻지도 않고 그냥 가려줘야 하는 부분만 가리고 밖을 나간다.

원초적인가? 원래 원초적으로 태어났다가 원초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몽상이라기엔 현실인데

현실을 살다보니 몽상을 안하곤 살아갈 수가 없는데


몽상을 끝내면

현실도 끝나는데


뭔 상관인데.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는 일도 이제 그만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

순간 속에 자신을 발견


순간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르다.


유폐하는 그 시간 마저도 언젠간 그래, 그 유폐했던 시간이 있어서

나를 알 수 있었지. 유폐 꼭 나쁘게 만 볼게 아니다.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환영, 나는 자정이 좋다.

하루가 바뀌는 그 자정이 좋다.


또 새롭게 입금되는 월급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 24시간

나는 그 시간을 환영한다.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군.

저녁이 되면 곧 또 하루가 시작되는 구나.


불면이 아니라 내일이 기대가 되서 잠이 오지 않는다.

1분 1초가 아까워서 눈이 빨리 떠진다.


옥죄는게 없는 이 순간.

옥죄며 살아가는 사람은 날 부러워할까?


그렇다면 해봐라.

백수도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오늘은 떡볶이 투어를 가볼까.

전국에 떡볶이

김해에서 먹었던 떡볶이도 맛있었고

서울에서 먹었던 떡볶이도 맛있었고

천안에 있는 마늘 떡볶이도 맛있는데


그래서 또간집 유튜브를 좋아한다.

광고성이 아닌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그들만의 재방문집.


하루를 거창하게 살 필요가 없다.

뭐 거창하게 살려고 태어난게 아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무소유에서 풀소유


무소유가 더 행복할까

풀소유가 더 행복할까


그 중간지점은 더 행복할까?


행복하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

살아서 행복한 것을 왜 모르는가.


나도 근데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사랑은 365일 10대에서 90대까지 해라.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다.


사랑하고 안 하고의 일상의 온도차는 다르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일 부터가 사랑의 시작이었더라.


그러니까 이혼이나 새출발을 두려워 말라.


대신 양다리는 죽음뿐이다. 매듭 짓고 해라.

나쁜놈 나쁜년되기 싫어서 문어발 걸치다간

다리 다 짤려져 나간다. 콱 그냥.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상처까지도 즐길 수 있을 때

그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헤어짐을 생각하고 만나진 않지만

헤어짐도 품을 수 있을 때 시작하는 사랑이


덜 불안하고 덜 두렵다.

언젠가 헤어지겠지를 생각하면

더 최선을 다하게 된다.


아낌없이 사랑해라.

줘도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


그리고 내가 해준 만큼 그 사람이 주지 못한다고

날 안 사랑하나, 내가 별로인가도 생각치 마라.


그럴려고 사랑하는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구걸이 아니다.

근데 난 약간 구걸도 했던 듯...


구걸하다 안 주면 가차없이 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삶인가.


비웃어도 괜찮다.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 모순적인 문장은 무얼까.

마치 내 삶과 비슷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내 뱉으면 안되고

내 뱉었으면 지켜야 한다.


그런 말 하지 않기로

그런 행동 하지 않기로


약속을 걸고,


나는 그런 말을 하고

나는 그런 행동을 했다.


그 한테는 상처였겠지요.

기분파인 나는 그런 나로 인해 상처 받을 당신을 위해 떠났습니다.


그게 더 상처라면

내 상처는 뭐로 보상하지요.


상처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대문과 안방 문은 다르다.

대문은 활짝 열어놔도

안방 문은 굳게 잠군다.


그게 내 룰이다.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길바닥에서도 잘 잔다.

지하주차장에서도 잘 잤다.


이럴 땐 여자인게 싫다.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내가 베스트드라이버라 해도

방어운전을 해도

운전은 나 혼자 하는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서

다 같이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오로라를 보고 싶다.

눈물이 난다고 하던데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경의롭고, 웅장해서 흘려보고 싶다.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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