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도수 8도, 취하기 정도 86% 브뤼셀
2023.1.15 벨기에 앤트워프에서는 오랜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었다. 앤트워프에 오고 처음으로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기에, 이 날을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로 활용하겠노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생각난 것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가보는 것이었다.
앤트워프에서 기차를 타고 약 1시간을 달리다 보면 브뤼셀에 도착한다. Antwerpen-Centraal Station에서 IC 기차를 타고 Brussel- Centraal에서 내렸다. 기차표 값은 편도 11.08유로 정도로 약 14000원이다. 왕복이면 3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인데, 한 시간 기차 타는 것치곤 결코 싼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역에서 앤트워프 중앙역까지 탈리스(우리나라로 치면 ktx)를 타고 오면 1시간이 걸리는데 기차값이 약 4만 원 정도다. 심지어 이 가격도 제일 싼 표를 구한 것이다. 그러니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값이 그리 바 싸게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신기한 것은 IC기차는 별도로 좌석을 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표만 소지한다면 비어있는 원하는 자리에 앉으며 된다. 김물은 큰 창이 나있는 자리에 앉았다. 가는 길의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속열차를 많이 타봤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도 드넓은 논과 밭이 보이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곳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끄러운 기찻길 옆이지만 푸른 풀밭 위에 양들과 소들은 자유롭게 풀어져 있고 그 뒤로는 전원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또 그 앞의 도로에서는 사람들이 러닝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주거가 주 목적인 도시처럼 보이긴 했지만 스캄프랑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집을 보는 기분이었다. 넓은 마당과, 전원주택, 그 앞으로 흐르는 물과 푸른 풀을 뜯고 있는 흰 양들. 열거한 단어들만 보아도 알프스 산맥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이곳은 벨기에 메헬렌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 관광지도 아니지만 어쩌면 모든 나라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명한 것들은 정말 유명한 것이지, 그곳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기차로 지나친 마헬렌을 여행할 마음과 계획은 없지만, 반짝 거리는 이야기 감을 찾은 듯 우중충한 날씨에 물들었던 내 마음에도 다시 해가 났다.
마헬렌을 통해 다시 한번 자연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뭉쳐 있던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 창 밖 속 풍경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 한눈에 볼 수 없는 지구에 내가 살아가는 사람을 느끼게 해주는 힘 말이다.
브뤼셀 중앙역에 도착했다. 매서운 바람이 나를 맞이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에 왔다는 설렘이 있었기에 당연한 바람일 뿐이었다.
브뤼셀은 앤트워프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관광객도 많고 길도 널찍하다. 앤트워프에서는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는데 브뤼셀은 관광지와 역사의 숨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보자마자 소리 질렀던 그랑플라스. 저 건물은 브뤼셀 시청사이다. Town Hall이라고 하던데, 우리나라의 시청을 City Hall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각나서 처음에는 시청사가 아니라 구청 정도 되는 건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시청사였다. 견고한 외벽과 높디높은 꼭대기가 압도적이다. 압도된다는 말을 쓰기에 시기적절한 때였다.
저런 아름다운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있다. 현대와 고전의 공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저 스타벅스도 들어가면 평범한 스타벅스일 것이다. 다만 그랑플라스 건물에 위치한 평범한 스타벅스. 어딘가 모순된 느낌이 있지만 어쩌면 옛 건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보전보다는 함께 어울려가는 방법이 적합해 보이긴 한다.
브뤼셀의 유명한 볼거리 ‘오줌싸개 동상‘. 실제로 보면 더 작고 귀엽다. 17세기 분수이며 축제 기간에는 다양한 옷을 갖춰 입는다고 한다. 내가 본 소년 동상은 알몸이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왜 소년 동상만 있냐며 소녀 동상도 만들어야 한다고 하여 소녀 동상도 만들어졌는데
소년 동상에 비해 살짝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보니 귀여웠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고 소년 동상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관광객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인증샷을 남기고 갔다.
빠질 수 없는 감자튀김과 와플. 감자튀김은 생감자를 바로 튀겨서 주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진짜 보슬보슬한 감자가 들어 있어서 여러 개를 먹어도 크게 물리지 않았다. 와플은 기대 이상으로 쫀득하고 고급진 달달함이 입안에 퍼져서 먹으면서도 또 먹고 싶었다. 나는 간식거리를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벨기에에 와서는 길거리 음식이 보이면 다 접해보는 중이다. 또 모른다. 나와 잘 맞는 음식을 찾을지. 일단 와플 합격.
브뤼셀은 미니미 파리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프랑스풍 건물이 많다. 브뤼셀 왕궁 또한 위에 있는 벨기에 국기를 빼고 프랑스 국기를 꽂으면 큰 이상함을 못 느낄 만큼 건물 양식이 비슷하다. 지금은 폐쇄되어 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보는 내내 너무 아름다워서 궁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가며 다양한 위치에서 궁을 바라보았다. 만들어진 미를 발산하는 브뤼셀 왕궁은 보면 볼수록 자연과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궁궐과는 상반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깔끔히 조경된 정원은 시간이 지나도 위엄을 잃지 않는 왕궁의 가치를 높이는 듯 보였고 그들의 문화유산을 대하는 나라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역시나 압도당했다. 성 마카엘라 성녀 구들라 대성당이다. 사실 이 성당에 대한 정보는 접하지 못하고 갔기에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성당이다. 골목길을 지나 큰길로 나왔는데 큰 성당이 나에게 보였고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말을 뱉었다. 보자마자 감탄사를 자아내는 건물은 사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널려 있지만 접할 때마다 마음이 웅장해지는 기분은 늘 좋다. 아마 이 기분에 중독되어 유럽 여행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문화적으로 앞서간 그들의 나라에 있자 하니, 그랜드 투어가 발달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Delirium Café라는 곳으로 맥주가 유명한 펍이다. 레드 맥주와 그린 맥주를 시켰는데 난생처음 먹어보는 맥주 맛이었다. 사실 벨기에에 오기 전부터 컨디션 난조로 고생을 했는데 도착하고 나서도 몸이 나아지질 않아서 꽤나 큰 고생을 하고 있는 터였다. 약을 복용해서 술도 당연히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몸이 좋아진 기념으로 맥주를 마신 것이었다.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벨기에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인생의 술 도장 깨기를 하나 한 기분이랄까. 맥주마다 맛이 다르다는 소문이 진짜였고, 마시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며 마셨다. 하지만 감탄사는 맛있어서 나기 보다는 아마 브뤼셀 구시가지 골목 안에 있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아서 난 것 같다. 여행의 묘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