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이름을 짓는 것이다.
부르기 쉬워야 하고, 놀림받지 않아야 하고, 오래도록 좋은 기운을 품고 있어야 한다.
돌림자를 쓰는 집이라면 더 어려워진다.
이름 하나에 마음을 다 쏟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릴 적엔 달랐다.
만화책 속 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면,
‘나중에 아이 낳으면 이 이름으로 해야지.’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한 번도 그렇게 흘러가 준 적이 없다.
정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닉네임.
그래도 닉네임 하나 짓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미 사용 중인 이름. 글자 수 제한.
너무 길다, 너무 흔하다.
조건은 많았고, 마음에 드는 이름은 번번이 막혔다.
결국 포기하고 대충 지을 때도 있었다.
'먹고 또 먹고' 같은 이름처럼. 가벼워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데 단 한 번,
아무렇게나 짓고 싶지 않은 순간이 왔다.
브런치에 처음 가입할 때였다.
글쓰기는 늘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무렇게나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주 작게라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으니까.
실명을 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이름이나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미술사 책에서
‘아치’에 관한 이야기를 만났다.
솔직히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다.
아치가 뭐가 그리 특별하단 말인가.
그런데 거기엔 작은 놀라움이 숨어 있었다.
아치가 없던 시절, 세상은 수직으로만 버티는 구조물뿐이었다.
하지만 아치는 달랐다.
수직 하중을 양쪽 지지대로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구조.
서로 기대어 버티는 원리.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모든 힘을 마지막으로 완성시키는 돌 하나.
키스톤.
콜로세움의 천장도 그 돌 하나로 살아남았다.
천 년을 넘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 단어가 내 마음에 박혔다.
브런치 필명을 정해야 했을 때
‘키스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글쓰기는, 결국 세상과 나를 잇는 방식이니까.
어딘가와,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아치를 건너는 일 같았다.
그 아치의 한가운데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버티는 돌.
연결을 완성시키는 돌.
키스톤.
그 역할을 내 글이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이름을 찾았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름을 ‘키스톤’이라고 쓰고 나서
어깨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글도 예전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단단해지려 했다.
가볍게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어지는 이 얇고 소중한 연결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 이름을 지을 때 사주를 보기도 한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바란다.
‘키스톤’이라는 이름이 내 글과 독자들을 더 깊이 이어주기를.
흩어지지 않게, 조금 더 단단하게.
그렇게,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