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보이지 않은 선생님과 백덤블링

by 키스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시간.

졸업이다.


보통 졸업이라 하면 시린 겨울 한복판인 2월을 떠올리지만,

요즘은 '시작'의 의미를 미리 품으려는 듯 1월에 졸업식을 치르는 학교가 많아졌다.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이라는 말에는 어쩌면 1월의 졸업식이 더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우리 집에는 두 아이가 나란히 졸업을 맞이했다. 같은 '졸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두 아이의 얼굴은 전혀 다른 빛깔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막내의 졸업식은 시청각실에서 조용히 시작되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끝났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담임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은 교단.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무척 서운해했다.

나 역시 그랬다.


내 빛바랜 졸업앨범 속에는 늘 담임 선생님과 나란히

어깨를 맞댄 사진이 중심을 잡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삭제된 졸업식은

어딘가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를 잃어버린 듯했다.


첫째, 둘째의 졸업식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에 허전함과 씁쓸함이 조용히 겹쳐졌다.

반면, 둘째의 졸업식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반면, 둘째의 졸업식은 전혀 다른 공기로 가득했다.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에 오른 아이는 돌연 백덤블링을 했다.

자신의 폼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건네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우리 아이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전교생 앞에서 사랑 고백을 했고,

누군가는 옆돌리기로 박수를 받았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었던 졸업장 수여식은 그렇게 아이들의 개성과 웃음으로 채워졌고,

그 순간, 졸업식은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행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카메라 플래시 속으로 흩어졌다.

이제 아이에게는 가족의 프레임보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더 소중해 보였다.

겨우 한 장의 가족사진을 남긴 채,

아이는 수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부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 뒤를 쫓으며 셔터를 누르느라 마치 한바탕 축제를 치른 사람처럼 숨이 가빴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학교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둘째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부모의 손길이 절실했던 초등학생 때와 달리 스스로 삶을 개척해온 아이.

때로는 어둠 속을 걷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즐겁게 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애썼다. 그리고 고맙다.’



“졸업식 날은 무조건 중국집이지!”

앞장서 걸으며 툭 던지는 아이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시대의 졸업식은 아이들에게 우정과 자기표현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부모인 나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남겼다.

손을 꼭 잡아 이끌어주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아야 할 때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과거의 졸업식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선택한 방식의 행복을 묵묵히 존중해주는 일이다.

아이들의 앞날을 응원한다는 말은,

결국 그들 각자의 걸음을 믿고 조용히 지켜보겠다는 절절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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