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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May 15.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거리다.

 굳이 남의 대학 중도에까지 들어가 볼 필요가 있을까 싶긴했지만 남들은 모를 우리만의 여행지에 가는 것 같아서 신선한 기분이었다. 정숙한 마음으로 시카고 대학의 중앙도서관에 들어갔다. 다들 공부하러 오는 데 방해하는 거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중앙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 발길 닿는 대로 가보았다.


 어디나 도서관은 참 쾌적한 것 같다. 조용하고 시원하고 정숙하다. 간간히 책에 얼굴을 파 묻은 학생들이 보였다. 5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내 눈에 들어 온 곳은 창가에 위치한 낮은 원형 테이블과 그 주위에 놓여 있는 소파. 몇 군데의 볕이 잘 드는 창가 마다 세팅되어 있었다. 마치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카페와도 같았다. 그 곳으로 가서 소파에 앉아보았다. 목까지 등받이가 받쳐주는 페브릭 소파와 무릎 높이의 테이블이 편히 앉아 쉬엄쉬엄 있기 좋았다. 등을 기대고 소파로 푹 들어갔다. 돌아다니느라 지친 내 몸에는 더욱 편안했다. 앞의 테이블에 발을 올려 보았다.      


 “머하는 거예요?” 승연이가 속삭이며 나무랐다.

 “괜찮아, 여긴 자유의 나라잖아. 영화보면 강의실에서도 엄청 편하게 앉아 있더만.”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편했다. 잠이 들 것 같았다. 말은 그래도 예의지국 출신이라 그런지 공공장소에서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있기가 마음이 영 불편해서 다시 내렸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그래요, 좀 쉬어요. 난 다른 데 좀 보고 올께요.”     


 승연이는 다른 곳을 구경하러 갔고 그 참에 나는 눈을 좀 붙였다.


 스르륵하고 대략 20분정도 잔 것 같았다. 시 도서관에서 자는 잠은 꿀맛이다. 학생시절에도 도서관에만 가면 어찌나 잠이 잘 오던지...뿌듯한 개운함을 느끼며 몸을 늘리며 일어났다. ‘이런 데 와서 낮잠도 다 자보네. 진짜 이런데서 공부하면서 살면 재밌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승연이를 찾아 나섰다. 승연이는 넓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른 층의 LAB실에서는 중국이나 대만 유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몇몇이 보드에 뭘 적어가며 토론같은 걸 하고 있었다. 뭔가 멋져 보였다. 나중에 국제적인 기업의 프로그래머가 될 인재들인가? 열정적인 모습 보기 좋군. 


 뜻 밖으로 얻어 걸린 학구열의 현장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눈앞으로 잔디밭 정원과 멋진 양식의 건물들이 보였다. 기분 좋았다. 약간은 현지인이 되는 듯 한 재미도 느꼈다.


 “고맙다.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 그럼 이제 진짜 학생 식당만 가면 되겠다.”

 “그래요, 밥 먹으러 가요.”      


 캠퍼스 맵을 보고 식당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지만 가는 곳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방학에다가 주말이라 완전히 문 닫았나 보다. 한국의 대학도 그런가? 졸업한지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네. 하하핫”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숙소에서 좀 쉬는게 어때요?”

 “그래, 그러자. 오늘 하루 정도는 좀 쉬어주자.”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그런지 배가 고프고 더위도 힘들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돌아가 지하철 역으로 다시 돌아갔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첫 날 들렸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사고 음료수를 약간 사서 게스트하우스의 식당 층으로 갔다.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오는 길에 발견한 피자가게가 한 곳뿐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일도 먹자.”


 며칠 째 피자로 가득 채워진 배를 뚜들기며 숙소에서 쉬었다. 쉬는 김에 게스트하우스 세탁실에서 여행 떠나 온 처음으로 빨래도 하고 식당 층에 앉아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다 창 밖 경치 구경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종일 시간 죽이고 있는 여행자를 보면서 '진짜 세상 여유 있나 보다.' 했었는데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아도 그러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시간 속절없이 잘 흘러갔다. 내가 열심히 돌아다니던 앉아서 시간을 죽이던 전혀 상관 하지 않고 어딘가에 쫓기는 것처럼 쉬지도 않고 잘 흘러갔다.


 빨래를 꺼내 와 나의 2층 침대 난간에 촘촘하고도 가지런하게 널어두었더니 간만에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 사이 창밖으로 서서히 어둠이 내렸고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저 시간을 보내니 또 아까워 하다 못해 동네 한 바퀴라도 해야겠다 싶어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지하철역 반대 편으로 길을 잡아 생각없이 걸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시카고는 바람이 많이 부는 구나. 윈디 시티라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컴컴한 길거리를 무서운 지도 모르고 한참을 걸어 동네 한바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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