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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Dec 15. 2022

서울에 눈이 내리면

서울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눈구경하기가 어렵다. 몇 년에나 한번 기상이변이 있어야 올까 말까한다. 그러니 눈이 오는 날이면 커플들은 날을 잡았겠거니와 애고 어른이고 다들 좋아한다.


 어릴 적 어느 날 이른 아침,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때 엄마가 커튼을 활짝 걷으며


 "빨리 일어나봐라, 눈 왔다~" 라고 깨우셨던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뻑뻑한 눈을 어렵게 뜨며 창가로 다가가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빛나는 동네에 절로 눈이 뜨이며 속에서 부터 "와아~~~~" 하며 감탄을 했다. 바깥엔 벌써 동네 사람들 여럿이 나와 쭈구리고 앉아 눈을 뭉쳐대고 있었다.


 뼈 빠지게 일하러 간 아빠만 빼고 나와 동생과 엄마는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 손이 닿는 데까지 손을 뻗어 가며 눈을 있는대로 마구마구 끌어모아 눈을 굴려 눈사람도 만들고, 뭉쳐서 눈싸움도 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칠 때까지 놀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찾아가 발자국을 내며 뽀드득 뽀드득 거리며 걷기도 하고 쌓인 눈 위로 눕기도 하고 시린 손으로 사진도 찍고 했다.  귀한 눈이 이만큼이나 왔으니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흙구덩이와 범벅된 눈 구덩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쉬워 했었다.


 서울에 와서 재밌는 것들 중 하나가 겨울마다 눈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오면 눈구경은 예삿일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자주 온다. 겨울이 되면 뉴스에서 눈 많이 오니까 조심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펑펑 쏟아지기도 하고, 펄펄 내리기도 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기도 하고, 어디선가 흩날려 오는 듯이 오기도 하고  다양한 모양새로 해마다 꼬박 꼬박 눈이 내린다. 처음 서울에서 눈을 만났을 때 같은 나라에 있어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당연히 내리는 눈이니 또 당연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 만큼 눈을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해하고 걱정을 먼저 한다. 누군가는 눈 치울 걱정, 누구는 눈 길 걱정, 누구는 교통체증 걱정. 눈이 내리는 날 사람들이 SNS에 눈이 내리는 사진을 올리며 적은 글들은 '예쁜 쓰레기가 내려요.'라는 식이 많다. 그래도 내리는 게 예쁜 건 부정할 수는 없나보다.


 서울에 와서는 눈 내린다고 눈사람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어쩌다 누군가 대충 화단에 조그만하게 눈 두 덩이를 쌓고 나뭇가지로 눈사람 형태만 잡아 놓은 것만 봐도 서울 한 복판에 눈사람이라니 하며 반갑고 귀엽다.


 서울에 산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이젠 전처럼 눈을 반가워 하진 않는다. 와 멋지게 내린다고 잠깐 감탄은 하지만 출퇴근길과 길 가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서울 사람 다됐다. 


 올 여름에 갓 상경해 서울 생활을 시작한 고향 동생에게서 눈 온다며 신난다면서 꺄악 꺄악 대는 메세지가 왔더랬다.

 그런 그에게 좋을 때라며 몇 년 지나면 내리는 눈과 함께 걱정도 내리게 될꺼라했더니 자기는 그럴 일 없을꺼라며 항상 좋을 꺼라고 했다. 니가 아직 서울사람이 덜 되서 그렇다고 해주었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와서 재밌다. 올 겨울에도 눈은 여지없이 내리겠지만, 어떤 서울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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